
스위스는 알프스의 나라입니다. 산만 전 국토의 70%, 여기에 호수를 합치면 75%입니다. 경작지가 겨우 25%뿐인데요.

그마저 냉해가 심해 농사짓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랫동안 스위스는 늘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통했습니다.
이에 해외로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나야 했는데 그것이 용병 사업입니다.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살았기 때문에 폐활량이 뛰어났고 체력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과 싸우느라 많은 실전 경험도 갖고 있었습니다.
로마 교황이 있는 바티칸조차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경비는 오로지 스위스 용병에게 맡기고 있을 정도로 스위스 군인들의 용맹함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그런 스위스가 현재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는지 산업을 중심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선 구교와 신교 간의 종교 전쟁인 위그노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때 신교도들인 위그노가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이주해 왔는데요. 이때 넘어온 위그노 중엔 당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시계공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이 시기 스위스에는 보석 세공업 같은 정밀 수공업이 발달해 있었지만, 검소한 삶이 강조되던 종교개혁 분위기로 인해 이들이 대거 시계 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는데요.

이들이 위그노의 장인들에게 시계 제작 기술을 배웠고, 여기에 세공업자 특유의 정밀함이 더해지자 품질이 뛰어난 시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는 인구가 매우 적은 나라라 무역만이 살길이었습니다. 좁고 험난한 산길이 많은 나라라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제품이라면 운송이 어려워 외국에 내다 팔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런 면에서 시계는 스위스에 여러모로 딱 들어맞는 제품이었는데요.
시계는 작고 가벼웠지만 그런데도 부가가치는 엄청났습니다. 용병 사업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스위스 역사상 첫 산업이 탄생이며, 지금 초고가의 명품 시계로 세계를 휩쓰는 ‘시계의 나라’ 스위스가 된 것입니다.

스위스 시계는 비쌌고 그럼에도 높은 품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가가치가 높은 비싼 제품만 판다”는 기조는 오늘날까지도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또 다른 예가 스위스 제약사업입니다. 알프스의 산자락에 진기한 약초가 산더미처럼 많다는 걸 알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들은 약초를 알약으로 만들었습니다.
약초는 시계 보다도 가벼웠고 부가가치도 높아서 가방 하나 만 들고 유럽에 내다 팔아도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약업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날 스위스는 세계 신약 발매 1위 기업인 노바티스, 항암치료제 1위 기업인 로슈 같은 세계적인 제약회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약소국이었을 때 스위스의 지리적 위치는 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역에 눈뜬 스위스에겐 교통의 요충지가 오히려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스위스는 알프스 너머의 나라들과 교역을 늘리기 위해 19세기 초에는 도로 건설에 주력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철도망도 대폭 늘렸는데요.
이것이 스위스에겐 전혀 기대치 않았던, 또 다른 산업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스위스 경제에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업입니다. 이 당시 유럽의 부유층들은 해외여행이 가능했는데요. 19세기 말이 되어서는 35만명의 관광객이 스위스를 찾아 알프스에 아름다움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시계와 관광, 제약 등에서 자본을 축적하게 되자 스위스는 금융업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리고 은행 사업의 성공은 알프스에 갇힌 빈국 스위스를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국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스위스 은행하면 예금주와 돈의 출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비밀주의로 유명합니다. 이게 바로 루이 16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요. 이렇게 시작된 스위스에 금융업은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건 스위스가 중립국의 지위에 있었다는 점과, 스위스라면 자신들의 돈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요. 전쟁이 나자 부자들은 안전한 나라를 찾았고 스위스 은행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몰려 들었습니다.
스위스의 안정성이 부각되자 수많은 국제기구들도 스위스에 잇따라 자리 잡았습니다. 세계무역기구, 국제적십자사, 국제보건기구, 국제노동기구, 국제결제은행 등 30여 개의 주요 국제기구와 250여 개의 NGO 단체가 스위스에 양질의 일자리를 지금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국제올림픽위원회와 국제축구연맹도 스위스에 본부가 있으며, 또한 구글의 해외기술센터를 포함한 5천여 개의 다국적기업이 스위스에 소재지를 두고 있어 이 나라의 부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스위스에 산업 흐름을 보면 일관성이 있습니다. 바로 ‘역량의 집중화’. 스위스의 인구는 오늘날에도 870만 명 정도이며, 영토도 남한의 40%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작은 나라가 모든 분야의 산업을 고루 발전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요.
그래서 스위스는 특정 분야의 산업에 올인해 왔습니다. 온 역량을 집중해 특정 산업의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린 다음 물건을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것, 이게 스위스가 지금까지 수백 년간 반복해 온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스위스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첨단 하이테크 산업입니다.
스위스는 크게 뭉뚱그려 얘기하면 ‘이공계의 나라’입니다. 대다수의 학생이 가는 직업학교도, 대학교도 이공계가 절대 다수이고, 절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그리고 이들이 시계에서 시작된 정밀기술에 전자공학을 결합해서 의료기기, 선박터빈, 발전설비, 정밀측정기는 물론 우주비행선까지 최첨단 하이테크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 제품들은 당연히 엄청나게 비싸고 그럼에도 엄청나게 잘 팔리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만 팔고 있는 것인데요. 목숨을 담보로 용병으로 먹고살던 나라를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2천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