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발명됐다며 신기술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뉴스를 뜨겁게 달궜던 기가 막힌 신기술도 몇 년이 지나도록 상용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잊혀지는 일이 많은데요.
그런데 과학계의 분석에 따르면 신기술들이 이렇게 상용화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배터리라고 합니다.
동력 공급을 요구하는 수많은 기술들이 실제로 사용되기 위해서 필요한 배터리의 조건이 맞지 않아서 상용화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반도체 분야에는 집적하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2년이 지날 때마다 반도체 기술의 수준이 2배씩 펄쩍펄쩍 뛰어오른다는 건데요.
반면 배터리 성능은 이런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술 전문 매체 씨넷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 배터리의 성능은 채 2배도 오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술 더 떠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또다시 12년의 시간 동안에는 성능이 30%도 향상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현용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은, 이미 효율 개선의 한계에 거의 부딪혀서 점점 성장 폭이 둔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혁명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배터리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뛰어오르는 바로 그 시점에, 인류의 기술 수준 역시 단번에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배터리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것이 바로 ‘전고체 배터리’인데요.
관련 기술과 자원이 있는 나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음 시대의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서 전고체 배터리 개발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닌데요. 최근 한국에서 보통의 전고체 배터리와도 차원이 다른 성능을 갖춘 배터리를 개발였습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김해진 소재분석연구부 박사 연구팀이 한국화학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전남대, 인하대 연구팀과 협업해서 안전한데다가 자유 변형까지 가능한 전고체 이차전지를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배터리는 흔히 상상하는 박스나 원통 모양이 아니라 얇고 널찍해서 언뜻 보면 종이처럼 보이는 형태였는데요.
생김새만 종이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종이처럼 접거나 구길 수도 있고, 심지어는 가위로 잘라내도 멀쩡하게 작동하는 상식을 초월하는 성능을 보여줬습니다.

연구팀은 자유 변형이라는 이점뿐만 아니라 배터리로서의 동력 공급 성능도 확보하기 위해 힘썼는데요.
이를 위해 1mm 이하 얇은 두께로도 대용량이 가능한 적층 기술을 확보했으며, 1mm 수준의 얇은 전지로 제작한 100mAh 용량의 전고체 이차전지는 500회 충,방전 굽힘 테스트 1000회 진행 후에도 90% 이상의 용량을 유지했습니다.

김해진 박사는 “기존 배터리 기술이 향후 10년 이내에 성능 개선의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덧붙여 “이 기술은 기존 배터리 기술을 대체할 수 있고, 웨어러블 전자기기와 드론, 전기자동차에 활용되는 중대형 이차전지 모두에 적용 가능해 미래 이차전지 산업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존의 배터리 기술의 주류였던 리튬 이온 전지는 획기적인 에너지 저장 효율 덕분에 현대 사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형태지만 그 구조적인 한계 때문에 활용성을 크게 저해 받고 있었습니다.
인화성을 지닌 액체 전해질 사용과 과충전으로 인해 고열이 발생하게 되면 폭발할 위험 등 리튬이온 전진은 이런 명확한 단점과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성능 때문에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배터리 혁명’의 후보로 꼽히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완전 고체는 고체 전해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액체 전해질보다 훨씬 물성이 안정적인 고체를 집어넣어 리튬 이온 전지의 고질병과 같은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발상입니다.
이는 의외로 성능 개선에도 도움이 되는데요. 에너지 저장 밀도를 끌어올릴 수도 있고, 액체 전해질의 유출로 인한 쇼트의 위험이 없는 만큼 하나의 패키지에 여러 셀을 눌러 담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 전고체 배터리야말로 실현 가능한 기술 수준에서 배터리 자체의 성능을 가장 높게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입니다.

세계 각국의 배터리 기업들이 이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시키겠다고 선언하고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한국의 기초지원연에서는 이 고체 전해질이라는 특성을 최대한으로 살린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자유 변형 전고체 배터리의 가장 큰 잠재성은 향후 배터리가 들어가는 전자기기 일체의 설계 사상을 뒤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를 설계한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는 배터리가 동력의 충전과 방전에 용이한 위치에 일정한 부피를 차지하고 있어야 했는데요.

하지만 이번 발명은 이런 배터리 형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수 있습니다.
자유 변형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라면, 배터리 간 전력만 연결된다면 배터리 자체는 그냥 빈 공간 어디라도 구겨서 담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기초지원연의 자유 변형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최근 비싼 값에 민간기업으로 매각되었는데요.

기초 지원연은 기술개발 1년 만에 시제품까지 완성해 둔 상태였고, 그 기능을 일부 개선하면 대량 생산도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이번에 민간기업에 매각되며 조기 상용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기업 주도로 개발되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는 상용화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은 상황인데요.
삼성, LG, 현대 등 배터리 경쟁에 뛰어든 기업들은 입을 모아 2030년까지 자동차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전고체 이차전지는 기술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다리고 있는 미래 유망기술이고 많은 국가와 기업이 개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빠른 시장 선점인데요.
만약 한국이 자유 변형 전고체 배터리를 필두로 하여 미래 배터리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면, 미래 기술의 패권 경쟁에서 초격차를 벌이고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