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확산 초기 마스크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마스크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을 정도로 지난 3년 동안 생활필수품이 되다시피 했던 마스크.
그것도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데요. 올해 1월 31일 기점으로 야외에 이어 실내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여전히 실내와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월 1일 뉴욕타임스에 ‘아시아에서 마스크 관련 정책을 완화하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쓰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는데요.
메인으로 올라온 사진이나 기사가 올라온 시기 등을 보면 한국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문단부터 한국과 같은 곳에서는 마스크 관련 규제가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마스크 착용이 보편적이라고 했는데요. 마스크 의무 작용 해제 이유에 대해서 기사는 의사소통 방해나 안경의 김 서림 등 여러 불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적 추세와 생활에서의 불편 해소를 위해 우리 대한민국도 야외와 신뢰를 막론하고 의료기관이나 대중교통 등 일부 장소를 제외한 곳에서의 마스크 의무 착용을 해제하게 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신규 확진자가 의무 해제 이전보다 줄어들 정도로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첫째 이유로 한국에서 마스크 착용이 이미 습관화된 점을 들었습니다.
2년도 더 넘게 마스크를 일상적으로 쓰다 보니 벗어도 된다고 해도 잘 벗지 않게 되었다는 건데요.

언론에서 나오는 시민들과의 관련 인터뷰에서도 오히려 마스크를 벗는 게 이제는 낯선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2002년에 사스와 2012년에 메르스 등으로 코로나 이전에도 펜데믹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을 이미 겪어봤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호흡기 질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 마스크 착용임을 체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로 의무 해제와 별개로 보건 전문가들이 여전히 착용을 권해서라는 걸 꼽았는데요.

관련 규제는 해제하고 있지만, 의료 및 보건 관련 기관에서는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 줄 것을 강력히 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실내 마스크 의무 작용 해제 관련 정책 홍보물을 보면 ‘해제’가 아닌 ‘권고’로 전환, “착용 적극 권고” 등의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바이러스 변이종 등으로 인해 코로나가 언제든 재확산 될 위험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오미크론의 하위 변이종인 XBB1.5가 확산돼 이 변이종의 전체 확진자 82%가 미국에서 나오고 감염 재생산 지수도 한 명당 1.6명일 정도인데요.
다행히 국내에서는 전체 확진자 중 0.2%에 불과하지만, 전파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무턱대고 안심해도 되는 상황은 아닌데요.
그러니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무가 해제되었어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BBC 등 여러 언론에서는 이러한 의학적 이유 외에 한국에서 마스크를 여전히 착용하는 색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데요.
바로 외모입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외모와 관련해서 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마스크가 얼굴을 가려줘 화장이나 면도 등 외모를 가꾸기 위해 예전처럼 시간을 들여도 되지 않아서인데요.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마스크를 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외모에 관한 자존감을 들었으며 이들 중에는 식사도 마스크를 위로 살짝만 들어 올리고 하거나, 그것도 힘들면 아이의 점심을 거르기도 할 정도라고 합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에서도 한국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화장을 하지 않거나 웃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음을 강조했는데요.
문화연구학자인 김상민 교수는 이와 관련해 “마스크는 얼굴에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을 덜어주며 이 때문에 마스크를 벗는 걸 사람들이 불편해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렇듯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됐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쓰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그중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건, 사람들이 마스크 쓰는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마스크 쓰는 것을 에티켓으로 여기고 있다고 봤는데요.

김상민 교수도 본인이 마스크를 계속 쓰는 이유로 자신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외부에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한국인들은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행위를 무례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덧붙였는데요.
이는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들에 비해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적었던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서는 마스크 착용은 물론 코로나 예방을 위한 백신까지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들이 있었는데요.

우리나라나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일각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서구처럼 조직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반대 시위를 하던 사람들이 내세운 근거는 정부가 코로나19를 빌미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려고 한다는 거였는데요.
더 나아가 아예 코로나19 자체가 정부에서 민주주의를 억압하기 위해 만든 가짜뉴스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 이들이 말하고자 한 건 바로 ‘개인의 자유’
특히 미국에서 벌어진 반대 시위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이들이 마스크나 백신 등에 반대하면서 내세운 구호는 “마이바디 마이초이스”입니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자유가 있으니 정부에서 마스크 써라 백신 맞으라고 하는 건 그러한 자유를 억압하는 거라는 것입니다.
물론 자유와 그로 인한 선택에는 대가도 따르는 법, 그 자유를 우선시한 사람들 때문에 미국에서는 현재까지 총 112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2차 대전 중 사망한 미군의 2배가 훌쩍 넘고, 울산 인구와도 맞먹는 수치인데요.
개인의 자유를 공공의 안전보다 중요시한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우리로 치면 광역시 하나가 전멸당하다시피 하는 피해가 발생한 것입니다.

반면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은 마스크 써야 한다고 하니까 바로바로 쓰기 시작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를 두고 전체주의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그런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한국과 일본 양국의 코로나 사망자 수를 다 합쳐도 미국 사망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10만을 겨우 넘는 수치를 보면 어느 쪽이 옳았는지 뻔히 보입니다.
미국과 유럽이 자신들의 사고나 행동이 전 세계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전체주의라 비아냥거렸던 동아시아, 미개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피해가 미국과 유럽에 비해 훨씬 적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