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독일의 과거사 처벌은 끝이 없다고 말합니다.
매년 독일은 자신들이 벌인 만행에 대해 공식적 인정과 사과를 반복하고 있으며, 최근까지도 재판정에 90세가 넘은 노인을 세우는 등 유대인 학살과 나치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을 방문한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에게 기시다 일본 총리가 황당한 요구를 합니다. 베를린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인데요.
기시다 총리는 “위안부상이 계속 설치돼 있는 것이 유감이다. 일본의 입장과 상반된다”며 철거를 직접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숄츠 총리 쪽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일본의 독일 내 소녀상 철거 요구는 사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재독 시민사회단체 코리아협의회 주관으로 2020년 9월, 베를린시 미테구 에 설치됐는데요.

비문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여성들을 성노예로 강제로 데려갔고, 이런 전쟁 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생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라는 짧은 설명이 담겨있습니다.
소녀상을 설치하자마자 일본 정부는 강경하게 항의를 해왔습니다. 명백한 사실을 적시한 비석을 트집 잡으며 철거를 요청했는데요. 베를린 미테구는 설치 2주 만에 어쩔 수 없이 철거 명령을 내렸는데요.
이 소식을 접한 독일 시민은 물론, 사회단체와 정치권에서까지 들고 일어납니다.
“과오를 반성하고 사죄해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는데, 일본의 외교 압박에 굴복한 거냐”라며 분노했습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인데도 독일 시민들은 거리에 모여 촛불을 들고 “베를린이여 용감하라, 소녀상은 여기 머물러야 한다” , “우리가 소녀상이다”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닷새 만에, 독일인 1만 2,000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확보해, 소녀상 설치를 주관한 코리아협의회는 바로 소송을 제기했고, 철거 명령은 보류되었습니다.
결국 미테구는 구 도시공간 예술위원회 권고에 따라 베를린의 소녀상 설치가 정당하다고 판단해 설치 기간을 1년 연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의 이런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독일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독일 내에서 묘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소녀상을 전시하겠다는 박물관은 물론이고,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까지 소녀상을 모셔가겠다 나섰기 때문인데요.

또한 일본 정부에 분개한 독일 국민들은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는 물론이고, 예술과 표현의 자유에 억압을 가하는 일본을 용서할 수 없다”며 일부러 소녀상을 보러 오기까지 했습니다.

반대로 산케이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사실에 어긋나는 내용을 기재한 소녀상 비석을 그대로 둘 수 없다. 총력전으로 철거를 밀어붙이겠다”는 일본 외무성 간부의 발언을 보도하며 여론몰이에 나섰습니다.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모르는 일본인들, 여전하다 싶은데요.
한편, 독일 명문대 라이프치히대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민 평화의 소녀상!!
소녀상을 초청한 것은 놀랍게도 라이프치히대 일본학과 슈테피 리히터, 도로테아 믈라데노바 교수였습니다.

이들은 위안부와 한국인의 강제노역 피해 등을 주제로 한 특별강연을 기획하고 있었는데요, 베를린 소녀상의 이야기를 듣고 강의실에 소녀상을 초청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특별히 이 강의는 학생은 물론이고, 시민들까지 누구나 들을 수 있게 개방된 강의였다고 하는데요. 매회 해외 100여명이 참석해 강의를 들은 것은 물론이고, 1시간 넘게 질의응답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강의실 의자에 앉아 학생 및 시민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습니다.
“오늘 손님으로 우리 강의실을 방문한 평화의 소녀상은 상징이면서도 현실입니다”라 말하며 특별 강연을 시작한 리히터 교수.

그는 일본 정부가 아직도 과거사를 부정하고 있다며, 위안부 피해가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기술되지 않는 점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또 다른 강연자 상믈라데노바 교수는 한국인들이 30년 동안 끈질기게 펼쳐온 국제 위안부 운동과 소녀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위안부의 정확한 규모는 가해자들이 자료를 폐기해서 추산이 어렵지만, 보수 역사학자들은 2만~ 4만 명, 활동가들은 20만 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들 중 대다수는 한국 여성이었다”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특히 그는 일본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하는데, 이는 침묵을 강요하는 비겁한 행동으로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하며, 법적 배상과 공식적 사과, 공식적 인정을 원하는 한국인들의 심정을 설명했습니다.
독일 내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녀상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독일인들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2019년에만 해도 독일 라벤스부르거 전시회에서 10cm 미니소녀상이 전시됐다가 일본 영사관 항의로 철거됐었는데요. 놀랍게도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민속 박물관은 10cm 소녀상이 아닌, 원래 크기의 소녀상을 실내와 박물관 외부에 전시하겠다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마리온 아커만 관장은 “전 홀로코스트 역사를 철저히 교육받고 자란 세대입니다. 독일 사회가 전쟁 피해자를 잊지 않도록 만드는 것, 전쟁 피의자의 이야기를 알리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소녀상 전시를 기획한 의도를 밝혔는데요.
이 전시는 한국 위안부와 함께,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저지른 학살과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 전 세계 전쟁 범죄의 현장을 폭로했으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습니다.

이 전시를 1년 동안 준비하며, 한국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는 독일의 전시 관계자들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후 한국에서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베를린 미테 구의 소녀상 영구 설치가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소녀상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애착이 크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데요.
평화의 소녀상은 국내에서만 130여개가 있으며, 해외는 13개의 소녀상과 기림비 형태도 20개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소녀상의 개수는 늘어났지만, 지난 5월 1일 김양주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셔서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이제 11명으로 줄었습니다.

이들에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정부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먼 이국땅에서 우리의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인 이들에게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