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우리 땅이?? 반환 요청 !! 푸틴이 절대 돌려주지 않는 우리 영토.. 이순신 장군이 지킨 그곳

전 세계에서 해결되지 못한 영토분쟁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특히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에서는 유독 빈번합니다. 국가 간 영토분쟁이 은밀하지만 치열하게 진행 중인데요.

우리에게는 중국의 계략으로 러시아에게 넘어간 여의도 4배의 영토가 있습니다.

일본의 해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 영웅으로 꼽히는 ‘사토 데스타로’은 1926년 ‘조선 지방행정’이라는 월간지에 ‘절세의 명해장 이순신’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장수는 이순신이다. 영국의 넬슨 제독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지만, 인격과 천재성에서 이순신에 필적할 순 없다”는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았다는 것 자체로 전설”로 불렸던 이순신 장군을 너무나 존경한 몇몇 일본인들은 한때 주기적으로 통영의 ‘충렬사’를 찾아 그에게 예를 갖추기도 했는데요. 이런 내용이 1977년 10월 일본에서 발행된 월간지 ‘아시아 코론’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신화가 시작된 곳이 어디인지 아는 분이 많지 않은데요. 그곳이 바로 러시아에 빼앗긴 땅 ‘녹둔도’입니다.

1587년 선조 20년 국토 최북단 국경 섬 녹둔도는 추수기를 맞이해 여진족이 침입해 국민을 납치하고 말을 약탈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역은 두만강에 가까웠기 때문에 토지가 비옥해 농사를 짓기에 훌륭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는데요.

1587년은 그 어느 해보다 풍년이 들었습니다. 이를 노린 여진족은 추수철을 맞아 기습적으로 침입했고, 조선군 병사 10여 명이 전사하고 백성 160명이 여진족에게 끌려가게 됩니다. 그때 이 섬의 수비대장을 맡은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었는데요.

뒤늦게 여진족의 침입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몇 안 되는 군사를 데리고 추격에 나서 적정 3명을 베고 백성 60여 명을 가까스로 구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함경도 지역 군대 총사령관을 맡았던 ‘이 일’은 이순신의 병력증원 요청을 묵살한 죄를 피하고자 이순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리고는 이순신을 잡아 가두고는 조정에 징계 여부를 물었습니다. ‘선조실록’ 21권에 따르면 선조 임금은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병사로 하여금 장형을 집행하게 한 다음 백의종군으로 공을 세우게 하라”고 하명했는데요.

큰 벌을 받을 뻔했지만 선조 임금 덕분에 간신히 처벌을 면했고, 이듬해 여진족 정벌에 큰 공을 세우면서 사면을 받게 되는데요. 당시 나이 43세 이순신의 생에 있어서 이 녹둔도 전투는 중요한 변곡점이 됐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지휘관의 존재를 국가가 처음으로 인지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인데요. 지금이야 이순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1587년 당시 이순신은 변방의 하급 무관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선조 임금이 녹둔도 전투를 패배라고 규정했다면, 임진왜란에서 귀신같은 전공을 세운 그의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녹둔도는 명백한 조선의 땅이었다는 점입니다.

녹둔도가 처음 우리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세종실록’으로 세종은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해 길이 1246척에 높이어 6척의 녹둔토성을 쌓고 목책을 둘렀습니다. 즉, 조선의 최북단 기지였는데요.

전진기지였기 때문에 병사를 제외한 농민은 섬에 거주할 수 없었고, 봄가을 춘경추수기에만 출입이 허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선의 영토였던 녹둔도는 어쩌다 러시아 땅으로 편입된 것인지 궁금한데요.

현재 러시아 땅으로 알고 있는 극동지역의 연해주는 한때 발해의 영토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을 잃은 우리 조상들이 망명했던 곳이며, 현재는 한반도와 국경을 맞댄 곳입니다.

녹둔도가 러시아 영토가 된 배경에는 청나라와 영국 간 아편전쟁이 있었는데요. 청나라는 제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5개의 항구를 개항하게 됐는데요. 영국은 무역 확대를 요청하며 청나라를 더욱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청은 과도하다며 영국의 요청을 거절했고, 결국 제2차 아편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때도 패배한 청은 영국과 ‘톈진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당시 러시아는 청과 영국의 텐진조약을 중재해주었고 그 대가로 청과 러시아 사이에 ‘베이징조약’이 체결되는데요.

이 조약으로 녹둔도를 포함한 연해주가 전부 러시아 영토로 편입됩니다. 이 기간 러시아가 청으로부터 가져간 영토가 1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데요. 이는 한반도의 5배이자 러시아 전체 영토의 6%가 되는 광활한 땅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녹둔도가 포함되면서 하루 아침에 러시아와 한반도는 국경을 접하게 되는데요. 당시 조선은 이 베이징조약을 알지 못했고, 녹둔도가로 러시아 영토로 편입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무려 29년이 지난 후에야 고종황제가 이 사실을 알고 청나라의 항의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이미 상당한 자료가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조선의 주장은 번번이 무시되었는데요.

심지어 1937년에는 스탈린 정부가 녹둔도에 거주 중이던 조선인들을 전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후 이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했고, 이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이들이 바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 흩어진 고려인들입니다.

군사기지를 건설했지만 접근을 금지시킨 탓에 녹둔도는 풀만 무성한 땅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실, 녹둔도가 조선의 땅이라는 것은 수없이 많은 지도와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섬이되 섬이 아닌 탓에 조금씩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데요. 1861년에 제작된 ‘대동여지도’는 해도로 그리고 있고, 1754년에 제작한 ‘비변사 지도’는 이를 두만강 하구에 삼각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1759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는 녹둔도를 육지화 모습으로 그렸는데요.

각 지도마다 그려지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녹둔도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그렇습니다. 홍수로 두만강이 범람하게 되면 여름에는 수로가 넘치면서 물에 잠기거나 습지가 됩니다. 수로가 막혀버리면 섬처럼 보이고 장마철이 지나면 길이 보이기 때문에 육지에 붙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녹둔도는 조선의 영토이기는 하지만 현재는 북한의 영토입니다. 그래서 지난 1984년 북한과 소련은 국경 문제에 관한 회담을 열었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도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역시 1990년 주한러시아 공사에게 정보 차원에서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는데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북한과 국경을 맞닿은 탓에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행태를 보면 반환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빼앗긴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만큼 이 녹둔도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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