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 먼 땅에서 우릴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 돕기 위해 적자 난 공장 운영하며 30년째 후원하고 있는 진짜 영웅

올해는 한국전쟁 71주년입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나라가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현재 생존한 해외 참전 용사는 11만여명인데요. 미군이 10만여명,에티오피아 100여명, 콜롬비아 400여명, 터키 1500여명 등 나머지가 1만여명입니다.

이중 선진국 참전 용사들은 국가의 복지 등으로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은데요.

6·25 전쟁 당시 머나먼 땅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에티오피아 6·25 전쟁이 끝난 뒤 에티오피아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한국의 편에 서서 함께 공산주의와 싸웠던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은 민족 반역자로 낙인찍혀 재산을 몰수당하고, 직업을 빼앗겨 오늘날까지 최 극빈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그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무심했던 많은 사람과는 달리, 에티오피아를 직접 찾아가며 30년 동안 참전 용사들을 후원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커피 공장을 운영 중인 신광철 씨입니다. 출입국 도장으로 꽉 채운 여권만 5개였는데요.


신광철 씨의 행선지는 단 한 곳, 에티오피아였습니다. 신 씨는 벌써 100여 차례나 에티오피아 방문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신광철 씨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 중 하나는 어느 작고 허름한 집. 이곳에서 신광철 씨는 익숙한 듯 집주인을 불렀습니다.

집주인인 할아버지는 아주 친근하고 다정하게 신광철 씨를 맞이했는데요. 할아버지는 과거 6·25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 용사였습니다.

머나먼 나라의 참전용사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 씨는 는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해외 참전용사 중 다수가 모국에서 제대로 된 복지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이분들을 돕는 것이 도리를 지키면서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995년 당시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던 신광철 씨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의 실태를 다룬 방송을 보면서 후원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에티오피아는 1951년 한국전쟁에 6037명의 황실근위대 소속 군인을 파병했는데, 1974년 왕정이 무너지고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참전용사에 대한 지원이 모두 중단되게 되었습니다.

공산 정권의 탄압 때문에 500명 이상 참전용사가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었던 것이었는데요. 신광철 씨는 자신이 활동하던 로터리클럽 회원, 월드비전 등과 함께 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후원 사업이 ‘생업’이 된 것은 뜻밖의 사건이 계기였습니다. 2000년 당시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관이 잠시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에티오피아와 인연이 깊었던 신 씨에게 한국 내 자국민의 지원을 부탁한 것이 시작점이었는데요.

대신 에티오피아 정부가 에티오피아산 커피 생두를 저렴하게 공급해주기로 하면서 그의 커피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후원을 맡은 30년 동안 참전용사들이 모여 살던 ‘코리아 빌리지’에는 자전거 공장과 가축 농장이 마련되었습니다.

중고 컴퓨터가 들어와 학생 수업에 사용됐고, 벽이 갈라지고 천장에 물이 새는 참전용사의 집 43가구는 개보수를 거쳐 새로운 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어렵게 사는 이들을 위해 생활비와 의료비를 지원하였습니다.

참전용사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도 세워졌습니다. 신 씨는 후원회 활동을 정전 70주년을 맞는 2023년께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참전용사들에게 ‘한국이 이렇게나 선진국이 됐다’고 말씀드리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세요. 내 몸이 다치더라도 한국을 도왔다는 걸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분들이 하루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은혜를 갚아야죠.”

커피 사업을 통해 참전용사들을 도와주면서 어려움도 많았는데요. 로스팅 공장을 파주에서 춘천으로 옮긴 후 재산권을 행사 못해 힘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커피 공장 땅 1만7000평이 한동안 문화시설 지구로 지정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엔화로 대출받은 엔화 가치가 올라가면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기도 했습니다. 커피 공장은 2014년 8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 2019년 11월 회생 절차가 마무리 되었는데요.

현재도 신광철 씨의 공장은 사정이 녹록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적자의 커피 공장을 운영하며 밤낮없이 고생 중이지만, 30여 년째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을 위한 후원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선행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신광철 씨는 “지금도 우리가 전쟁 때처럼 가난하다면 그저 이웃 나라의 한때의 신세였을 거예요”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어 “그런데 우리는 지금 잘살고 있잖아요”라며 “참전 용사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할 은혜”라고 전했습니다.


신광철 씨를 향해 한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한국을 위해 싸운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다시 참전하라고 해도 또 할 것입니다.


에티오피아의 참전 용사들은 이분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있어요”

“도움받은 우리는 사실 기억도 못 하는데 우리를 도와준 저들은 후손까지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또 자기들이 도와준 나라가 지금은 세계 강국이 돼 잘살게 됐다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자기 나라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친절을 베푸는데 우리는 왜 도와주는지도 몰라요.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고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불과 몇십년 전 6·25 전쟁 당시 머나먼 땅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에티오피아를 우리는 기억하고 그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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