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폭동 당시 흑인 갱단까지도 그 한국인을 지킬려고 스스로 나선 이유

브라질 축구 레전드라 불리는 호마리오 선수. 이 선수에게는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었는데요. 때는 1994년 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에서 납치범들이 호마리우의 아버지를 납치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를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안 납치범들이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이런 사건을 벌인 것입니다. 호마리우는 실의에 빠졌고 결국 언론에 중대적인 발표를 하는데요.

납치범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아버지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월드컵에 불참하겠다 선언한 것입니다. 축구의 미쳐 있던 브라질은 분노했고, 대통령뿐만 아니라 지역의 갱단들마저 납치범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이후 무서워진 납치범들이 아버지를 풀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이처럼 존중을 받으며 전 국민적인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미국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었는데요.

과거 1992년 LA 폭동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는데요. 당시 한인타운 대부분이 파괴되고 타버리는 등 그야말로 주변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흑인들과 심지어 지역의 갱단들마저 직접 나서 보초를 서면서까지 지켰던 한인상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역 주민들에게 ‘코리안 마마’로 불렸던 홍정복씨가 가게 주인으로 있던 곳이었는데요.

그녀는 LA에서도 대표적 흑인 거주지역인 사우스 센트럴에서 가족과 함께 작은 환전소 겸 식료품정인 밴네스 스토어를 운영하던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습니다.

가족들과 15년간 가게를 꾸려왔던 그녀는 인근 주민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였다고 하는데요. 그녀에게는 다른 가게주인과는 다른 남다른 면모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편견 없는 친절’이었습니다. 그녀가 왜 코리안 마마라고 불릴 정도였는지 당시 주민들이 말하는 일화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어 돈이 없던 한 흑인 여성은 아이 기저귀와 우유를 살 돈이 없어 가게 안에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보던 홍정복씨는 가방에 물건들을 챙겨주고는 “돈은 다음에 주세요”라고 말하고 돌려보냈다고 하는데요.

이에 감동한 여성은 이후 정말로 돈을 가져와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맥주캔을 훔쳐 달아나는 한 청년 사건도 있었습니다.
다른 가게 주인 같았으면 생필품도 아니고 술을 훔쳐 가는 청년에게 욕부터 했겠지만, 그녀가 청년에게 한 말은 “조심해 넘어질라”라는 걱정의 한마디였는데요.

또 한 번은 가게를 찾은 남성이 생계 보조비로 받은 수표로 술을 사며 그녀에게 나머지는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말했습니다. 혹시라도 술에 취한 그가 돈을 허투루 쓸까 걱정했던 그녀는 남성의 집에 전화를 걸어 부인에게 거스름돈을 직접 받아 가도록 챙겨주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외국인이 그녀의 가게를 오고 가며 겪은 가슴 따뜻한 일화가 가득하다고 하는데요.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였습니다.

바로 그녀의 시선이었는데요. 당시 흑인들은 다른 인종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면 ‘혹시나 물건을 훔치지 않을까’하는 감시하는 눈길과 의심의 눈초리를 항상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홍정복씨가 운영하는 가게에서만큼은 달랐습니다. 딱 봐도 불량해 보이는 10대 흑인 청소년들이 와도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눈빛으로 반겨주었는데요.

언제나 한결같은 그녀이다 보니 그녀의 가게를 한 번이라도 찾은 사람들은 언제나 마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선행은 LA 폭동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백인 경찰의 구타로 청각 장애인이 된 로드니 킹 사건으로 민심이 폭발하던 중 미국 언론이 갑자기 흑인 소년을 강도로 오인한 한인 마켓 주인 두순자가 우발적으로 총을 쏴 살해한 사건을 조명해 관심을 돌리는 행위를 하면서 흑인들의 분노는 한인을 향했습니다.

당시 한인타운이 받은 피해는 무려 4,000억 원에 이르렀는데요. 그런데 그러한 피해 속에 유일하게 폭동의 피해를 받지 않은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홍정복 씨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요.

흑인들이 자발적으로 불침번을 서면서 교대로 그의 가게를 지켜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갱단들마저도 가게를 지키고 있을 정도였는데요.

그러나 그로부터 7년 후 LA를 슬픔에 잠기게 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홍정복씨가 자신의 가게 앞에서 권총을 든 무장 강도 2명에게 살해된 것입니다.

LA 타임스와 뉴욕 타임스 등 현지 매체도 당시 홍정복씨의 부고를 크게 다루는데요. 코리안 마마의 죽음은 LA 전체를 울렸습니다. 장례식에는 지역 대부분의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이 참석했으며, 시의원들 지역 고위급 인사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슬픔은 잠시, 지역 주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마라고 불리는 그녀를 살해한 범인들을 찾기 시작한 것인데요.

심지어 갱단들조차 붉은 글씨로 장례식장에서 “마마, 우리가 살인마를 찾아 대가를 치르게 할게요”라는 쪽지를 남겼다고 하는데요. 그녀라면 그 범죄자들마저 용서했겠지만 자신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지역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주민들과 갱단들의 도움으로 LA 경찰은 사건 이후 15일 만에 범죄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행을 베풀면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신의 조그마한 선의가 나중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를 가장 잘 실천했던 한국인이었는데요.

아직까지도 세계에는 차별과 폭력시위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인종, 성별, 나이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보여준 홍정복씨의 모습을 전 세계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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