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위 대통령은 아니지만 미국 시민들에게 가장 많은 감동을 준 대통령

차가운 바람과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29일 새벽 4시. 미합중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 나타났습니다.

방금 착륙한 C-17 미군 수송기의 문이 열리고 아프가니스탄전 전사자의 유해가 담긴 관이 검정색 베레모를 쓴 미군 장병들에 의해 하나씩 차례대로 운구되어 나왔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수송기 앞에 다가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 없이 18구의 유해 운구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전쟁으로 희생된 15명의 미군과 3명의 마약단속국 요원의 유해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운구식이 끝난 뒤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도버 공군기지에 오기 위해 자정이 조금 못된 시각 백악관을 떠났다고 미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한잠도 못 잔 것입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유해가 송환되는 도버 공군기지를 찾은 첫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전사자들의 가족을 만나 위로하는 데 열성적이었지만 유해가 도착하는 공군기지에 나타난 적은 없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매일같이 벌어지는 젊은 남녀들의 특별한 희생을 또렷하게 되살리게 하는 계기였다”며 “우리 군대와 가족들이 전쟁 기간 동안 짊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관해 부담을 갖고 나도 이 전쟁을 어떻게 봐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새벽 4시 45분. 백악관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홀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미국의 군인이나 공직자는 물론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긍지를 느꼈을 장면이었는데요.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은 이런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 군대와 국민, 나라를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는 정치적 고향 시카고에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8년간의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고별연설을 했습니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도자의 힘이 진솔한 연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준 순간이었다. “미국 국민이 나를 정직하게 이끌었고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나는 매일 여러분으로부터 배운다” “여러분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었다”며 경제·외교 등 임기 중 치적을 모두 국민 덕으로 돌리고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오바마는 “그렇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해냈다(Yes we can, Yes we did)”라는 희망과 긍정의 주문으로 청중과 미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민주주의의 가치, 지도자의 덕목, 정치의 힘을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오바마는 긍정의 힘으로도 존경받아왔습니다.

이는 숱한 연설에서 고스란히 발휘됐습니다. 오바마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그렇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메시지를 국민 앞에 던졌습니다. 의지와 신념의 ‘초지일관’ 지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퇴임하기 직전에도 57%의 지지율을 얻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리처드 K. 베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바람직한 정치와 군사의 관계를 ‘평등한 대화, 불평등한 권한’으로 정의했습니다.

즉,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간 지도자가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지는 것(불평등한 권한)은 당연하다. 이는 민간 지도자들도 군사 지도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평등한 대화)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명제와 일치합니다.

전문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구석에 앉은 겸손한 지도자

당시 사진은 2011년 5월 1일 미 백악관 상황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조 바이든 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 마이클 멀린 합참의장,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과 함께 미 해군 특수부대의 오사마 빈라덴 급습 작전 실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전 세계에 감동을 준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겸손함입니다. 미국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 순간이 있습니다. 2011년 5월 1일 파키스탄 북부 도시 아보타바드에서 벌어진 작전명 ‘제로니모 E-KIA’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는 장면인데요.

오후 백악관 오바마는 지하 1층 상황실로 갔습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부 장관,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이 이미 모여 있었습니다. 미국 안보를 책임지는 최고위 국가안보 팀원들입니다.

사흘 전 오바마가 승인했던 빈 라덴 제거 작전의 시작을 두 시간쯤 남겨둔 시점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다음 순간 벌어졌는데요. 오바마는 상황실 한가운데 있는 큼지막한 대통령 의자를 특수전 전문가인 마셜 웹 합동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구석의 낮은 의자에 쪼그리듯 앉았습니다.

리언 패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기획한 이 작전은 미 해군 엘리트 측수부대인 네이비실 중에서도 가장 정예조직인 실 6(SEAL-6)팀이 실행했지만 오바마는 미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작전의 명령권자입니다.

그럼에도 중앙 자리를 작전 전문가에게 넘겼습니다. 이들은 대형 삼성 모니터를 통해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는 CIA 상황실의 패네타 국장과 화상으로 연결됐습니다. 작전은 40분 만에 마무리됐다. 9·11 테러 9년 8개월 만에 미국이 ‘공적 1호’를 제거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바마는 이날 저녁 생방송으로 대국민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잡았다(We got him). 이제야 정의가 실현됐다. 세계는 더 안전해졌다. 빈 라덴 사살은 10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다.” 이런 연설을 하는 동안 오바마는 한 번도 웃지 않았습니다.

빈 라덴 사살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단지 2막으로 넘어갔을 뿐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선택으로 평가됩니다. 오바마는 한 번도 이를 자신의 공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오바마는 국민의 마음속으로 다가가는 지도자였습니다. 대통령 재임 중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2015년 6월 26일 백인 극단주의자 청년의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농구경기장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한 오바마는 6000여 명의 성난 추모객 앞에서 30분간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미국의 첫 아프리카계 대통령으로서 극단주의, 인종차별, 폭력을 비난하고 엄벌, 법치, 정의를 부르짖는 열광적인 연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다못해 국민 통합이나 인종차별 철폐라도 외칠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그 자리에서 누구도 꾸짖지 않았습니다.

대신 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은혜,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해주셨네. 한때 길을 잃었으나, 지금 인도해주시고….” 1779년 영국 성공회의 존 뉴턴 신부가 만든 이 찬송가는 노예무역에 종사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죄를 사해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미국 민권운동 현장에서 자주 불렸습니다.

영결식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박수와 함께 오바마의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좌절 대신 희망과 감동으로 넘쳤습니다. 엄숙하고 분노로 가득했던 장례식장은 웃음과 갈채가 가득한 화합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분열된 나라에서 특정 세력이나 범죄자, 죄인을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희생자의 장례식장에서 오바마의 선택은 법률이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하나로 잇는 신앙이었습니다. 비난이 아니라 화합이었습니다. 그런 오바마의 행동을 통해 미 국민은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를 새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재임 중 미 국민이 그를 가장 자랑스러워했을 순간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도자는 어떤 존재라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법과 물리력이 아닌 용서의 마음과 뜨거운 감성을 앞세웠습니다. 오바마는 이렇게 국민 마음속에 직접 다가감으로써 포용과 감동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과 품성만 뛰어난 게 아니라 정치적 업적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과 약속을 지켰습니다. 오바마는 임기 첫 두 해를 경제 회복에 주력했습니다. 2008년 오바마 취임 당시 2007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금융위기로 휘청대던 미국 경제는 그의 재임 중 되살아나기 시작해 첫해 -2.8%였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분기 3.5%까지 뛰었습니다.

재임 중 1560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 실업률을 7.8%(2009년)에서 3.5%로 낮췄습니다. 오바마케어로 자비 부담 건강보험도, 정부 제공 의료보호도 받지 못하던 중간층 2300만 명이 새롭게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했습니다.

200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종식하지도, 이라크에서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제거하지도, 시리아 내전을 완화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해칠 수 있는 중요한 글로벌 갈등 요소 두 가지를 해결했는데요.

오바마는 오랫동안 ‘입속의 검은 잎’이던 이란·쿠바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핵 개발 의혹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집중적인 제재를 받던 이란을 설득해 핵 활동 제한의 대가로 경제제재를 순차적으로 풀고 있었습니다.

이란은 2002년 이후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아왔으며 2006~201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4차 제재 결의안 채택에 의해 경제제재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는 무력이 아닌 ‘P5+1(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인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독일)’과의 협상을 통해 새로운 대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들을 진정 생각하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했던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많은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가 있어 미국인들은 지난 8년간 행복했을 것입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