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가정 폭력 피해자 출신에서 우주 최고 히어로가 된 한국계 미국인..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조니 김은 이민 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니 김의 부모님은 198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한국인들 사이에서 주류 판매점을 열어 생계를 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민 노동자의 전형이었다, 일주일에 6일은 일해야 했다.” 고 밝혔으며 어머니는 초등학교의 파트타임 대체 교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조니 김은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 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습니다. 2002년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총과 아령으로, 가족들을 살해하려고 했으며, 조니 김은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아령으로 때려 얼굴이 크게 다친 상황이었습니다.

상황이 잠잠해지자 가족은 경찰과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경찰은 폭력적으로 대치하던 조니 김 아버지를 총격을 가하여 사살하게 됩니다.

조니 김은 이 상황을 겪으며 나 자신이 강해져야 동생과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고 다짐하고 최우수 고교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신념을 지키고자 미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미국 최고 티어 1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Navy SEAL)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주인공인 크리스 카일 중사와 함께 군 복무를 했고 복무 당시 이라크 파병을 두 차례 다녀오며 포인트 맨 의무병 저격수 등 다양한 보직을 맡았습니다.

은성 훈장, 동성 훈장, 전투 행동 약장을 수여한 상당히 뛰어난 대원이었고 은성 훈장은 군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 중 하나로 미국에선 이 훈장을 받으면 국민 영웅으로 여겨집니다.

어느 날 조니 김과 함께 소대 의무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동료의 얼굴에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기도 확보 처지가 진행되어 조니 김은 상급자들에게 항의하였으나 경직된 절차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어가는 동료를 눈앞에서 잃게 되는데요.

조니 김은 “동료가 얼굴에 부상을 입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감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고 군 응급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돌연 의대 진학을 고려하게 되고, 아주 험난한 과정에 돌입하였습니다.

미국 의대는 의학 전문대학원이므로,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했었는데, 조니 김은 군 장학생으로 네이비 씰 본부에서 가장 가까운 샌디에이고 수학과를 25에 늦깎이로 입학했고 28세에 3년 만에 최우등 졸업을 하게 됩니다.

또한 사병에서 해군 장교 전환과정을 합격한 이후 위대한 전우들의 추천서를 받아 여러 의대에 원서를 넣게 되는데요. 결과는 하버드 의대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하였습니다.

조니 김은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하버드 부속 응급의료센터에 인턴 과정을 수료하였고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응급실과 보스턴 브리검 여성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던 중에 나사(NASA)의 우주비행사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됩니다.

한인 최초 나사(NASA) 우주비행사로 선정되었습니다. 2017년 6월 18,300명이 지원한 나사(NASA)우주인단 22기에 1600:1의 경쟁률을 뚫고 11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으며 2020년 1월, 2년 반 동안 우주 탐사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수료하였고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임무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조니 김은 두 가지 경험이 우주비행사가 되는데 꼭 필요했다고 밝혔는데 네이비씰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는 회복력을 배웠으며 의사로서는 환자와 소통하고 연민을 가지는 능력을 키웠고, 모두 우주 탐사에 나서는 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뛰어난 이력 때문에 미국 내에선 우스갯소리로 곧 대통령이 될 거라는 반응이 있는데요. NASA 훈련 졸업식에 참석한 테드 크루즈 공화당 의원은 조니 김을 말도 안 되는 경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하며 당신은 우주에서 사람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살릴 수도 있다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나쁜 카드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지만 당신에겐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선택권과 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니 김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도 꿈이 없었으며 이민 2세로 암울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은 내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정체성을 찾을 수 없었다. 학교 무도회에도 참석한 적이 없고 여러 일에 겁내는 아이였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고 나도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라고 합니다. 이때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네이비씰에 입대한 것인데요.

“네이비씰에 입대한 결정은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결정이었다.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줬다, 네이비씰로 쌓은 경험은 내가 겪는 모든 일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내 인생 전체를 도와주고 있는 셈 ”이라고 밝혔습니다.

조니 김 자신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평범하다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독살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만족을 미루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시작은 미약해도 그 끝은 창대할 수 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도 다음 세대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조니 김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친부와 싸웠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미국 특전사가 됐으며,
“동료”를 지키기 위해 의사가 됐고,
“인류”미래를 위해 달 기지 우주인이 되었습니다.

조니 김 소령은 모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본인 스스로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맞서서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이었고, 소수인종 중에서도 불우한 가정폭력 피해자 출신으로도 가족, 공동체,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계속 전진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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