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발전의 큰 역할을 해왔던 해외 건설산업. 지난 2월 초 한국의 해외 건설 누적 수주액이 1,080조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는 1965년 현대건설이 태국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무려 6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뤄낸 대한민국의 작품입니다.
한강의 기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해외 건설은 전 세계가 불가능하다며 뒤로 물러설 때 대한민국은 한발 앞서나갔기에 가능했습니다. 여기 “인간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데?”라며 끊임없이 우리는 의심하게 만든 초대형 공사가 하나 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 역대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는 인물이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발주한 공사지만 ‘세계 8대 불가사의’로 꼽힐 정도로 대단한 공사였는데요.
이 공사가 한국기업에게 발주됐고 이 기업은 보란 듯이 성공해 보였습니다. 1984년 아프리카로 돌아가 보겠습니다.1953년 아프리카 이집트와 알제리 사이에 지중해를 끼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던 한 국가가 석유탐사를 시작합니다.

“바다 건너 중동에서는 어마어마한 원유를 뽑아 올리는데, 우리 땅에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건데요. 그런데 당시 석유를 탐사하라고 내보낸 탐사팀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땅 밑에는 석유가 아니라 지하에 어마어마한 물길이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그 물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사막. 사하라 아래에 1만년 전부터 축적된 대량의 지하수였습니다.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프리카 사막 아래에 거대한 물길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양 또한 어마어마했는데요. 조사에 따르면 이 사하라 지하에 고인 물은 약 35조톤으로 나일강이 200년 동안 흘려보내는 양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16년 뒤 1969년 쿠데타로 이 나라를 장악한 남자는 녹색혁명을 꿈꿨습니다. 바로 북아프리카 리비아를 지독한 독재의 늪에 빠트린 ‘무아마르 카다피’입니다.
육군 장교였던 카다피는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키로 아랍 사회주의 국가를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축출될 때까지 무려 42년간 리비아를 통치합니다.

그러나 독재에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카다피가 선택한 것은 지하강 카드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 평화를 가져올 ‘녹색혁명’을 내세웠는데 이 녹색혁명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1만년 전부터 사막 아래에 고인 지하수를 끌어올려 해안도시 트리폴리와 벵가지 등 도시에 식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해 저주받은 사막에 녹색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자급자족해 배고픈 국민들을 배불리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는 그는 정부 내에 ‘대수로 사업부’를 신설하고 특별법까지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리비아 내에서도 “당장 국민들 먹을거리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며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카다피는 “대수로는 농토를 늘려 식량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는데요.

당시 한국에서는 한 기업가가 카다피가 리비아에 대규모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사업을 따낸다면 이제껏 삼성과 현대에 밀려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던 우리가 주류로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습니다.
이미 그는 2년 전부터 들려오던 리비아 정보를 입수해 전담팀까지 꾸려 철저하게 입찰 준비를 마쳤는데요. 그리고 1982년 5월 전 세계 31개 건설사가 참여한 이 전쟁에서 당당히 승리의 수주를 따냈습니다. 바로 동아그룹의 ‘최원석’입니다.

그런데 카다피 역시도 ‘세계 8대 불가사의’라며 치켜올리면서도 이 사업에 대한 성공을 확신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사업이었습니다. 사하라 사막 저 깊은 곳에 매장된 지하수를 끌어올려 지중해 연안까지 끌어가야 하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이 공사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정도의 극한의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조급함 때문이었을까요? 27번의 저격을 받고 실제 15개월 수양딸을 잃기도 했던 카다피는 최원석 회장을 만나기 위해 사막으로 직접 백마를 타고 달려왔다고 하는데요.

리비아 공사는 단일 토목공사로는 인류사에 기록될 만큼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는데요. 총 5단계를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체 공사의 핵심은 1단계 동부 축과 2단계 서부 축이었습니다. 1단계 동부 축은 하루 200만톤의 지하수를 1,874km짜리 송수관을 통해 벵가지 등에 공급하는 죽음의 공사로 불렸는데, 84년에 삽을 떠 91년에 완공했습니다.
리비아의 경우 아프리카에 위치한 관계로 국토의 90%가 사막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송수관을 만드는 공장이 ‘사리르’라 불리는 지역에 있었습니다. 건설 환경 역시 최악이었는데요. 리비아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자재는 고작 골재와 시멘트, 물뿐이었고 나머지 자재는 전부 아프리카 밖에서 조달받아야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사막의 모래바람은 순식간에 사막 지형을 변형시키고, 자동차 유리창도 1년도 지나기 전에 마모시킬 정도의 강력함을 가졌습니다. 또한, 1,900km에 깔아야 할 원형 콘크리트 송수관은 1개당 80톤의 무게를 자랑했는데 이런 크기의 송수관이 무려 24만 6,000개가 소요됐습니다.

1단계 투입된 연인원만 1,100만명에 550만대의 장비를 투입했는데요. 80톤짜리 송수관을 옮기는 모습 또한 장관입니다. 제작된 송수관은 50대의 차량으로 구성된 운반팀이 담당했는데, 500m씩 간격을 유지하면서 이동하면 그 행렬의 길이가 무려 30km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는 송수관 매설작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송수관을 땅에 묻은 후에는 물 한 방울도 흘러나가지 않도록 엄격한 품질 검사 과정을 거쳤는데요. 8km마다 24시간 동안 실제 압력의 120%로 수압시험을 실시하고 이 시험에 통과해야만 되메우기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최원석 회장이 1단계 공사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카다피는 2단계 서부 축을 공표하며 또다시 국제입찰 경쟁을 시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아건설이 이를 수주하기는 했으나, 그 과정이 상당히 드라마틱했는데요.
카다피는 최우선으로 반대 세력이 많은 벵가지 지역에 우선 물을 공급한 후 2단계로 트리폴리로 물기를 연결하는 것이었습니다. 1,730km로 1단계 보다는 짧은 구간이었는데요. 1단계에서 동아건설은 36억달러로 수주했지만 카다피는 돈을 절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건설사를 상대로 경쟁을 붙여 가격을 낮추려고 시도했는데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공사라는 상징성과 어마어마한 금액을 눈앞에서 놓칠 기업은 없습니다. 2단계 수주전은 85년 6월 25일 리비아 정부가 전 세계 건설 업체들을 상대로 사전자격심사 초청장을 발송하며 궤도에 올랐습니다.

당시 한진, 삼환, 한양, 삼성, 대림, 현대, 대우 등의 한국 기업들을 포함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21개국 72개 업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사전 심사를 거쳐 최종 입찰 자격이 부여된 기업은 동아, 대우, 현대 등 한국기업과 프랑스, 영국, 인도에서 각 1개 기업, 프랑스와 소련의 컨소시엄 1개 등 7개로 압축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카다피는 의도적으로 가격을 다운시키려 수작을 부렸습니다. 협상우위에 서기 위해 일부러 업체선정을 3년이나 늦추기도 했는데요. 이제 최종적으로 3개 업체가 남았습니다. 프랑스의 ‘듀메즈’, 인도의 ‘컨티넨탈’ 그리고 동아건설인데요.
80년대 수십억 달러는 큰돈입니다. 이제 프랑스도 인도도 정부 차원의 로비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프랑스의 경우 서유럽으로부터 정치적으로 고립된 리비아를 위해 국제정치계에서 주류로 올라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약속했고, 인도의 경우 핵무기를 들고나왔습니다. 리비아에 핵기술을 전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리비아는 1988년 팬암 항공기 사건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었는데 미국이 사건의 배후라면서 제재를 시작했었습니다. 이에 카다피는 미국이 언제든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핵 개발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인도가 핵 개발 이전을 무기로 들고 2단계 사업 수주를 기대한 겁니다.
카다피는 1단계 공사를 안정적으로 진행 중인 동아건설이 쭉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최종 가격을 제시하라고 압박했고 인도가 제시한 27억달러보다 낮게 수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결국 수주를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대반전이 생깁니다. 카다피가 나서서 무조건 동아건설에 발주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인데요.
89년 8월 초 동아건설은 1단계 공사가 거의 완성될 즈음 ‘아즈다비야’지역에서 예비통수식을 거행했습니다. 리비아 혁명 20주년을 기념한 정식통수식에 앞서 진짜로 물이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사전행사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 뿐 아니라 리비아 정부 핵심 관계자들까지 숨죽이며 지켜보는 순간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려 1만 년 전부터 사하라 사막 지하에 차곡차곡 고인 물이 400km를 달려와 사막 한복판에 폭포를 쏟아냈습니다. 사막에 사는 이들에게 물은 신입니다. 1년 내 비 한번 구경하기도 힘든 그들은 송수관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너도나도 물에 뛰어들어 물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모든 결정은 내려졌습니다. 배수로공사 관리청의 ‘시알라’ 수석 의원은 즉시 카다피에게 달려가 “동아건설이 무조건 2단계를 맡아야 한다”며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는 카다피에게 협상 가격으로 36억 달러를 제시하면서 이 가격보다 낮게 수주할 수 없다고 전했는데 카다피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이제까지 경쟁입찰은 전부 무료로 하고 수의계약으로 변경해 동아건설에 주겠다고 했습니다. 금액 역시 36억 달러 보다 50% 오른 53억 달러로 높여주었는데요. 이 당시 카다피는 최원석 회장에게 “5단계까지 전부 동아건설이 맡아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으나 국내 상황으로 2003년 파산하고 동아건설이 대한통운에 인수되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요. 결국 3,4단계 공사는 대한통운 자회사 ANC가 수주에 2006년 최종중공 증명서는 받으며 인류역사상 가장 거대한 토목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기네스북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관개수로로 인증하면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아쉽게 현재 리비아의 대수로는 2007년 마지막 통수식과 2019년 5월경 서부지역으로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통제소를 무장단체가 점거했다는 소식 이후로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해외 건설업은 중동지역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아시아의 해외 건설 수주액이 중동을 따라잡았다고 하는데요. 신공법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K 건설.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