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수원화성’을 등재 요청했습니다.
심미적 가치와 더불어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것인데요.
문제는 수원 화성이 과거 6.25 전쟁 당시 파괴된 흔적을 ‘복구’한 유적이라는 점입니다. 수원화성을 답사했던 유네스코 회원들은 화성의 미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현대 복원된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일은 유례가 없었습니다.

이례적인 일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는데요. 현대에 복원된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유적이라는 의견이 팽팽했습니다.
팽팽한 의견 대립을 단숨에 불식시킨 것은 그 자리에 참석한 수원 시장이 가져온 어떤 물건 때문이었습니다.
‘화성성역의궤’를 검토한 회원들은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의궤에 기록된 그림과 수치가 현실 유적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인데요.

가장 문제가 되었던 예전 유적의 모습을 현재도 과연 그대로 간직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의궤로 풀린 것이었습니다.
의궤는 수원 화성의 설계도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전체 유적이 사라진다고 해도 의궤만 있다면 그대로 복원이 가능한 수준이었는데요.
화성성역의궤는 원래 수원 화성의 설계도로 활용되고자 만든 것은 아닙니다.
원래 목적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하고자 그 준비 과정을 기록할 목적으로 의궤를 제작한 것인데요.

정조는 회갑연만 아니라 행사가 벌어진 수원 화성에 대해서도 온전한 기록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화성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정조는 직접 의궤 작업에 관여하며 ‘화성성역의궤’를 남겼습니다.

수원 화성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록들이 모두 담겨있었기에 화성을 구성하는 벽돌의 종류와 수치, 문을 만들 때 사용한 목재 등 디테일한 요소들까지 모두 적혀 있었습니다.

심지어 수원화성 작업에 참여했던 인부의 이름까지도 적혀 있었는데요.
이를 본 회원들은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수원화성을 등재 시킵니다. 화성성역의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는데요.
유네스코 회원만 아니라 전 세계 역사학계는 수원 화성에 대해 “화성은 동서양을 망라해 고도로 발달된 과학적 특징을 지닌 근대 초기 군대 건축물의 뛰어난 모범”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스리랑카의 실바 교수는 “200년이라는 세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성곽의 건축물이 각각 독특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점에서 환상적이다”라는 평가를 남기며 화성의 위대함을 극찬했습니다.

유네스코에 유적을 등재할 수 있었던 저력은 기록을 좋아하는 선조들의 습관 덕분이라 할 수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기록물에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의궤 외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록유산들은 실로 장대한 수준입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로 알려졌던 구텐베르크 성경.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직지심체요절’의 등장으로 역사는 뒤바뀝니다.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은 ‘직지’는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섰는데요.
기록물에 유달리 강한 집착을 보였던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양의 책을 찍어낼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가 바로 금속활자입니다.

전 세계에 걸쳐 교과서와 백과사전, 세계사 책을 수출하는 영국 유명 출판사 돌킹 킨더슬리는 2018년부터 ‘직지’를 소개하며,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이 한국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021년 6월 인사동에서 발굴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중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16년이 앞선 ‘갑인자’의 존재를 최종 확인하면서 선조들의 기록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인 ‘조선왕조실록’ 역시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기록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글자는 대략 4965만 자를 자랑하는데요.
이 정도 규모의 기록물이 후대에 남아있는 경우는 오직 한국이 유일합니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대명실록’이 그나마 비견된다고 하지만 글자 수로 보면 대략 1600만 자 정도밖에 되지 않아 한국의 조선왕조실록에 얼마나 방대한 양을 후대에 남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기록의 세세함과 꼼꼼함에 있어 다른 역사 기록물에 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가치가 높습니다.
누군가가 벼락을 맞은 기록도 적혀 있고 심지어 천체활동에 대한 기록도 남겨져 있어 과거 조선의 하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하는데요.
또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승정원일기’ 역시 놀라운 양의 기록과 함께 그 정밀함과 세세함이 압도적인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조선왕조실록보다 더 많은 양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승정원일기만을 연구한다고 하면 몇십년의 세월을 투자해도 다 연구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이외에도 ‘동의보감’을 비롯해 근현대기록물인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록물과 ‘국채보상운동’기록물 등 과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작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습니다.
2021년 기준 총 16개의 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있는데요. 이는 기록물 숫자로 따졌을 때 전 세계 기준으로 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아시아로만 따져보면 한국이 단연 1위입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도 한국의 기록문화 유산에 미치지 못하는데요.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통해 자국의 유산을 불태운 덕분에 한국보다 더 적은 숫자의 기록문화 유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역시 기록물 숫자만 비교했을 때 한국에 비교할 수준이 못 됩니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기록에 목숨을 걸었고, 정밀한 양의 내용으로 후손들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고스란히 전달했습니다.
덕분에 세계적인 수준의 기록유산을 보유할 수 있게 되어 문화적으로 아시아 최고 선진국의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세계기록유산 등재 숫자를 늘리며 찬란한 한국의 유산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데요. 2016년 한국과 중국 등 9개국은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기록유산으로 공동 등재하고자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을 넣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안부 기록의 등재를 막고자 유네스코에 지불하는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를 압박하는 등 일본의 방해에 결국, 유네스코는 회원국의 이의가 가 있을 경우 당사자들 간 화해를 거친 뒤에 등재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선언하면서 위안부 기록물 등재 여부가 불투명해졌는데요.
그동안 각국 단체들이 일본 측과의 입장 조율을 시도해왔지만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으며 답보상태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위안부 기록물을 신청한 시점이 2016년이라 과거 신청 대상 기록물에 대해 현행 제도를 소급하지 않는 유네스코 입장에서는 위안부 기록물을 심사하고 등재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요.
역사적 사실을 감출 수는 없고, 제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저지른 역사를 후대에 남겨야 한다는 국제 여론을 감안한다면 유네스코에서 이를 거부하기란 어려운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