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학계 비상” 경북 한 지역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보물… 세계 최초로 발견되자 몽골 대통령 한 걸음에 방한한 이유


그동안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판단되어왔던 보물이 ‘세계 최초’로 ‘세계 유일’하게 한국에서 발견되며 세계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심지어 보존 상태까지 완벽했는데요.

그리고 이 소식이 세계로 전해지자 유일하게 심기가 불편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중국이었습니다.

땅만 파도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 그 자체인 곳 경주인데요.

경주에서는 문화재 주변 지역으로 지정되면, 화장실을 하나 설치하는데도 6개월간의 발굴 작업이 필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종 문화재가 발견됨으로 인해 모든 공사가 멈춰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결국 건축 공사 현장이 발굴 현장으로 바뀌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옛날 경주는 서라벌, 금성 등으로 불리며 신라 1000년 역사 속 수도였기 때문에 이토록 많은 문화재가 잠들어 있는 것인데요.

이후 동경, 계림부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지금처럼 경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수도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많이 모이는데요. 경주도 그랬습니다.

1000년 동안이나 수도였다 보니 수많은 사찰과 유적들이 남게 된 것인데요.

불국사 석굴암과 같은 역사 유적지구, 몇백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마을도 남아있어 지금도 경주에는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중 550년의 전통을 이어온 양동마을이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몇백년간 전통을 이어온 마을이니, 딱 봐도 여기에는 문화재가 엄청 많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정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동마을은 땅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보물이 발견되며 학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고 하는데요.

양동마을에 있는 경주 손씨 종가의 고택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문화재청 주관하에 건물을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리 과정에서 골치 아픈 일이 자꾸 벌어졌는데요. 그것은 바로 도난 사고였습니다.

결국 손씨 일가는 모든 것을 한국학 연구원 ‘장서각’에 기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장사각의 한 연구원이 파견되어 고택을 정리하던 중 창고 한편에 라면박스 하나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요.

라면박스를 열어보니 오래된 책들이 가득했습니다. 연구원은 그 책의 정체에 대해 고택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냥 중국 책인 거 같은데 아버님도 버리려고 치운 책인데 좀 있다가 버릴게요”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집주인이 버릴려고 라면박스에 모아두었던 중국 책 하지만 고택에서 발견된 만큼 연구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면박스도 연구소로 챙겨갔다고 합니다.

한국중앙연구원들은 고택에서 챙겨온 고문서들을 몇 달간 꼼꼼히 조사했지만 안타깝게도 딱히 대단한 발견이다라고 말할 책들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드디어 라면박스 속 문서들의 조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실 주워오긴 했지만 거의 마지막에 조사될 정도로 박스 속에 있는 책들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라면박스에서 세계의 보물이 튀어나왔습니다.

버려지기 직전이었던 쓰레기 중국 책이 원나라의 최후 법전 ‘지정조격’이었던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영원히 사라진 유물이라고 알려졌던 것이 ‘세계 최초’로 ‘세계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발견된 것입니다.

원나라는 우리의 역사가 아니지만, 원나라 법전 ‘지정조격’은 우리나라에도 정말 중요한 유물이었습니다.

지정조격은 1346년 충목왕 때 만들어진 원나라 최후의 법전이자 유일하게 남아있는 법전으로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었고, 또한 고려말 법전 편찬의 주요 참고 자료였으며, 조선 각종 외교 문서와 형사법의 참고 자료였습니다.

세종이 직접 지정조격을 인쇄해 배포하기도 했고, 집현전 학자들이 형법을 연구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임을 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중요한 법전이었지만, 원나라가 급격하게 멸망하며, 뒤를 이은 명나라가 원의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중국과 몽골 역사에도 기록만 남아있을 뿐 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기에 이 최후의 법전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고 판단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600년이 지나 본토가 아닌 한국에서 발견되었으니, 학계가 완전히 뒤집혔다고 합니다.

귀한 보물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좋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은 원래 지정조격 4권 중 2권밖에 발견되지 않았고, 2권 중 한권은 상태가 좋았지만 한권은 훼손이 심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나라 법전이라는 것 자체가 정말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몽골 대통령은 세기의 발견이라며 직접 한국으로 날아와 보고 갈 정도였습니다.

2020년 한국문화재청이 이 지정조격을 한국의 보물로 지정했는데, 그런데 이 소식에 중국은 심기가 불편해졌다고 하는데요.

중국은 지금 원나라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나라의 역사는 중국 땅에서 벌어졌었지만, 분명 몽골의 역사입니다.

그런데도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몽골을 되찾자며 이상한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인데요. 몽골도 그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중국에게 한국에서 발견된 하나뿐인 원나라의 보물은 탐이 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한국의 보물로 지정하고 한국의 남겨둔다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남의 것은 못 뺏어서 안달 난 중국으로부터 우리의 보물들을 더 잘 지켜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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