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 출생의 웨슬리 스나입스. 단역 및 조연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을 시작한 그는 20대 중반까지 무명 배우로 세월을 보내다가 대박 기회를 잡게 되는데요.
바로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의 배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할렘가의 갱스터 역할을 맡았는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오디션장에 나타난 그가 너무나도 연기를 잘해 마이클 잭슨이 그를 갱스터였다고 믿어버린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저 깡패 연기를 했을 뿐이지만, 뮤비에 꼭 출연하고 싶었던 웨슬리는 마이클 잭슨이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 뒀고 덕분에 그는 그 역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뮤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할리우드 감독 스파이크 리의 눈에 드는데요.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낸 스파이크 리는 그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의 모베터 블루스, 정글 피버 등의 작품을 찍었습니다.

이 영화들로 인해 웨슬리는 할리우드에 점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고,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나 액션 영화에도 캐스팅되는데요.
1992년 영화 패신저 57로 액션배우로의 이미지가 강해진 그는, 이후 데몰리션 맨, 더 팬, 도망자, 블레이드 시리즈 등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대중적인 인기 스타, 액션 스타였을 뿐이지 우수한 연기력을 인정받는 명배우라고 평가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 변곡점이 된 것이 바로 영화 원나잇 스탠드였는데요.

1997년작 영화 원나잇 스탠드는 하룻밤의 강렬한 사랑에 사로잡힌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그동안 액션이 강조되던 역할과는 다르게 금지된 사랑에 푹 빠져버린 남자를 맡은 그는,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며 90년대 최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스타성과 연기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지만, 화려한 탑스타답게 그도 사생활이 복잡하고 여성 편력이 상당했습니다.
그에게는 1985년부터 함께 결혼생활을 해 온 에이프릴 뒤부아라는 여성이 있었지만, 결국 5년 만에 이혼하고 말았는데요. 에이프릴 뒤부아는 정확한 이혼 사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여성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20대 초반부터 함께한 부인과 헤어지곤 난 후 그는 한동안 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여러 여성과 염문을 뿌리며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겼는데요.

그렇게 바람둥이로 이름을 날리던 중, 동양적이고 이국적인 매력을 가진 여자를 우연히 마주친 그녀를 보고 오랫동안 멈춰있던 자신의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에게 사로잡힌 웨슬리는 저 여성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웨슬리 주변에 널려 있던 모델이나 여배우가 아닌 평범하고 소박한 일반인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박나경 씨.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토종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화가를 꿈꾸는 평범한 유학생이었던 박나경씨는 처음에는 웨슬리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특히 그의 화려한 소문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경계했는데요. 하지만 웨슬리는 그녀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주변 여자들을 모두 정리했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한국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글을 배우기도 하고, 한국문화를 잘 알고 싶어서 직접 체험하기 위해 극비에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노력이 지속되자, 박나경씨도 점점 웨슬리에게 신뢰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박씨의 마음을 열어간 그는 마침내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었는데요.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갈수록 둘이 무척 잘 맞는 짝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함께 살면서 사실혼 관계로 지낸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도 생겼습니다. 슬하에 딸 하나, 아들 둘을 두었으며 이중 막내아들은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가 2003년 결혼 이후에 생긴 아이였습니다.
아이를 낳고도 결혼을 하지 않은 채 함께 키운다는 사실이 한국인 입장에서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서양에서는 무척 흔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동거 생활을 하다가 이 사람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결혼을 하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꽤 일반적인 편인데요.
2003년 3월 17일 두 사람은 뉴저지에 있는 카운티 법원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면서 마침내 정식 부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평범한 유학생과 할리우드 스타의 조합을 이상하게 여기며 두 사람이 금방 깨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분명 그가 더 어리고 예쁜 여자에게 갈아탈 것이라 여겼는데요. 실제로도 웨슬리 스나입스는 결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불화 루머를 겪어야 했지만, 그때마다 아내와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줘 소문을 일축시키곤 했습니다.

아내와 만나면서 한국을 사랑하게 된 그는 아내의 모국인 한국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다”라고 말했는데요. 박나경씨와 함께 살게 된 후 그는 종종 한국을 방문했고, 장인 장모와도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며 처가와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엄마의 바다로 유명한 박철 PD로, 처가 식구들의 영향 때문인지, 웨슬리 스나입스는 점점 입맛이나 취향도 한국인들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는 한국 음식중에서는 깻잎을 무척 좋아하며, 한국 드라마 중에서는 ‘태조왕건’을 인상깊게 봤다고 밝혔습니다.
좋아하는 배우로는 유명 무술 감독이기도 한 정두홍이 있는데요.
짝패를 무척 감명 깊게 봤던 웨슬리가 정두홍 감동에게 직접 연락하여 두 사람은 서로 우애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보고 한국 영화팬들은 웨서방이라는 귀여운 호칭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화목한 가정을 꾸려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도 2020년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장인 박철 PD가 2020년 7월 13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웨슬리는 장인의 별세를 슬퍼하며 직접 한국어로 적은 긴 추모글을 남겼는데요.

그는 장인을 영원한 거장이라고 치켜세우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 문화를 창조해내어, 한국이 멋진 강대국으로 거듭나는 문화적 역사의 앞자락을 이끄셨다”고 적었습니다.
올해 만 60살이 된 웨슬리 스나입스는 이제는 영화배우보다는 작가, 제작자로서의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그가 앞으로도 한국인 부인 박나경 씨와 다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도록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