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이태리, 일본 세계 최고 명장들이 인정한 명장 보유국 한국 직접 한국까지 오는 이유

귀금속 브랜드 제이에스티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김연아 선수가 모델로 기용되면서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쌓았는데요. 사실 이 브랜드가 김연아 선수를 후원한 것은 그녀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녀가 세계 최고의 피겨 여제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면서 제이에스티나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는데요.

그런데 이 제이에스티나가 한국 최고의 시계 전문 브랜드 ‘로만손’이라는 기업의 쥬얼리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80년대 한국은 시계 산업에 있어서 전 세계 시장을 호령하던 3대 강국이던 시절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시계를 만들었고 몇몇 한국 고유 브랜드들은 고가의 예물 시계로도 사랑받았었습니다.

스위스,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시장을 호령했었는데요. 1990년대 급격히 무너져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 시계, 오리엔트, 아남 등 국내 대기업이 내수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달성하기도 했고, 특히 삼성 시계의 경우 일본 세이코, 스위스 론진 등에 라이선스 방식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해외명품 수입이 허용되면서 고가제품을 스위스 시계에, 가성비에서는 일본 시계에, 가격에서는 중국 시계에 밀리면서 지금은 그저 옛날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로만손’이라는 브랜드는 한국 브랜드 중 가장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가격 덕분에 중국에서 생산된 짝퉁 시계가 반입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한국 시계 브랜드 중 그 어떤 브랜드도 로만손만큼의 국제적인 위상을 가져본 적 없었는데요.

그러나 지금은 제이에스티나로 사명까지 변경하면서 유명무실한 시계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한편, 세계 최고의 시계 생산국이자 가장 선진화된 시계 기술을 가진 스위스에는 당연히 장인들이 넘쳐 날 것이고,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수리 전문 장애인들도 전부 스위스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위스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시계는 반드시 한국으로 옵니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 장인이 한국 대구광역시 중구 교동 귀금속 거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골목에는 ‘공인사’라는 명품 시계 전문 수리점이 있는데요. 4평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박준덕’이라는 세계 최고의 시계 수리 명장이 있습니다.

시계의 이면에는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기계가 자리 잡고 있으며, 자그마한 시계 하나에 필요한 부품이 무력 90여 개이며, 소위 최고급으로 불리는 스위스 명품 시계는 그 부품이 무려 150개를 넘는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많은 부품이 서로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에 부품 하나라도 잘못 작동하면 시계 전체가 멈춰버립니다. 오래된 시계뿐 아니라 모든 기계식 시계는 필수적으로 오버홀 작업을 해야 합니다.

디지털시계와는 달리 기계식 시계는 5년에 한 번씩 오버홀을 작업을 해야 하는데요.

시계를 열어 무브먼트 상태를 파악하고 시계 모든 부품이 정확히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부품이 마모되었다면 교체해 출고 전 상태로 만드는 작업입니다.

호기심에 분해했는데 분해의 역순을 따라가지 못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국내는 물론 미국, 영국, 스위스 할 것 없이 전 세계 모든 고장 난 시계는 이분을 찾아옵니다.

그의 가게가 특별한 것은 전 세계 모든 시계 장인들을 돌고 돌아 “수리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은 후에 그에게 맡겨지는 시계가 대다수라는 점입니다.

특히, “부품이 없어서 고칠 수 없다”는 시계들의 대부분은 그에게 오는데요. 스위스 등 시계 강국의 기업들도 수리를 포기한 제품들도 상당수 그에게 보내집니다.

오래된 명품 시계 가장 큰 문제는 기종이 단종되어 부품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시계 명장답게 직접 부품을 만듭니다.

시계 움직임을 좌우하는 톱니바퀴의 고장이 가장 흔한데 그는 기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경험과 감각으로 좁쌀보다도 작은 톱니바퀴를 만들어 죽어버린 시계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명장’이라는 타이틀은 한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가진 이에게만 부여되는 특별한 호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려 60년 동안 오로지 시계 하나만을 고쳐온 박준덕 씨야 말로 명장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어울리는 분입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유일한 영국 시계학회 회원인데요. 물론 국제적으로도 공인 되어있습니다. 영국 시계학회란 영국의 국가검증 시험을 주관하는 곳으로 박준덕씨는 이 기관이 주관하는 영국 국가검증 시계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 과정은 초급, 중급, 최고급으로 나뉘는데요. 최고급 과정 시험은 시계학이론, 시계학제도, 실기테스트 등 3과목을 보게 됩니다. 각 과목당 40점 이상이면 ‘합격’, 60점 이상이면 ‘명예로운 합격’, 80점 이상이면 ‘신의 경지’라고 불리는데 그는 1984년에 이미 ‘신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이 자격증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자, 당시 300여명의 내로라하는 전 세계 시계 전문가들이 응시했으나 합격자는 단 8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현재 공식적으로 명장을 뜻하는 최고급 자격증인 FBHI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이 시험에 합격한 인물로 박준덕씨는 한국에서 두 번째인데 첫 번째는 1980년대 스웨덴으로 이민 간 (고) 김창모 씨인데 그는 초급단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창모 씨의 경우에 자격증을 취득한 덕분에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시계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BHI의 자격증은 시계 부문의 노벨상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자격증입니다.

스위스 BHI자격증은 스위스는 물론 전 세계 최고의 시계 전문가가 되는 것인데 그는 이 자격증을 위해 36권의 이론과 실기, 제도에 관한 책을 섭렵했고 이론, 제도, 실기 테스트 3과목을 전부 패스했습니다.

사실 박준덕 명인은 국내에서만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모든 시계 전문가들이 포기한 시계는 여지없이 그에게 맡겨지는데요.

오죽하면 스위스 본사에서도 그에게 직접 수리를 의뢰할 정도라고 하는데요. 이태리, 스위스, 일본 등 시계 강국의 전문가들도 포기한 시계가 그에게 맡겨지는 겁니다.

그 중 그의 기억에 남는 시계는 독립투사의 회중시계입니다. 2014년 12월 29일 의뢰인의 외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는데, 그가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회중시계가 그의 사망과 함께 땅에 묻혔습니다.

이 시계는 현재 세계 3대 명품 중에서도 당당히 최고를 자랑하는 ‘파텍 필립’제품이었는데요.

이 회사는 현재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제품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박준덕 명인은 인터뷰에서 “독립투사의 시계가 당시 최고 명품인 ‘파텍 필립’ 회중시계였다”고 밝혔는데요.

“파텍 초창기 필립과 합작하기 전 제작된 제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가격을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브랜드 가치상 현재 그 제품의 가격은 책정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시계는 후손들이 만주에 묻힌 유골을 한국으로 옮기기 위해 발굴했다가 발견됐는데 모든 부품이 마모되어 있었습니다.

일본의 최고 장인에게 맡겼으나 “고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고, 이후 스위스에서는 “이딴 시계를 가져오냐”며 욕을 먹고 결국 박준덕 명인을 찾아왔습니다.

박준덕 명인 역시 소중한 시계임을 직감했기 때문에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모든 부품 하나하나를 다시 만들어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60년 시계 수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독립투사의 시간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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