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 터에 진짜 이것이 있었다고?? ” “이병철 회장에서 이부진 대표까지 삼성이 신라호텔을 공들여 지은 이유??

사전적인 의미로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따로 잘 지은 큰 집이라는 뜻을 가진 ‘영빈관’.
호텔신라의 영빈관 자리 근처에는 1920년대 초반에 일제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을 지었습니다.

한자로 ‘이등박문’ 일본어로 읽으면 이토 히로부미 그래서 ‘박문’을 따서 ‘박문사’라 이름 지었으며,심지어 일제가 그 박문사의 문을 경희문의 정문이던 홍화문을 떼 와서 썼습니다.

광복 이후 우리 정부는 당연히 이걸 놔둘 수가 없었는데요. 그래서 일제 패망 이후에 대학 기숙사로 잠깐 쓰이던 이 박문사를 우리 정부가 헐고, 그 자리에다 외국 국빈을 위한 숙소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1967년에 준공된 ‘영빈관’입니다.

그리고 이곳 관리를 정부 기관 여기저기서 맡아 썼는데, 한때는 지금의 국정원인 중앙정보부가 받기도 했습니다. 그랬는데 수지가 안 맞으니, 이걸 민간으로 넘기게 되는데요. 1973년, 영빈관과 주변 임야를 (주) 임피어리얼, 삼성그룹이 낙찰받게 됩니다.

그 당시를 두고 훗날 삼성 이병철 창업주는 자서전을 통해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영빈관을 인수해서 국빈이 묵을 수 있고, 1000명 규모의 국제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호텔을 지어 달라는 정부의 간청이 있었다. 당시 서울에는 한국의 얼굴이라 내세울 만한 호텔이 없었다 이왕 건설할 바에는 귀빈을 안심하고 모실 수 있는 초일류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이 일본 갈 때마다 묵었던 오오쿠라호텔의 회장을 만나서 직접 제휴를 논의하며 호텔 운영에 노하우를 전수 받고, 또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받아서 호텔 ’신라’를 짓게 됩니다.

찬란한 우리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던 신라시대의 우아한 품위와 향기를 재현해 보고자 청기와, 신라의 꽃 격자무늬, 봉황, 범종, 샹들리에 금속 장식 등등 곳곳에다가 우리의 문화 요소를 심어놓았던 것입니다.

마침내 1979년에 신라호텔 전관의 문을 열었는데요. 그 당시 오일 쇼크가 나고 불황이 겹치면서 장사는 막상 잘 안됐는데요. 특히 당시 한국경제 상황을 생각해보면 외국 손님들 없이는 이 대형 고급호텔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신라호텔 경영이 어려웠을 때를 회상한 다른 말들도 살펴보면, 이병철 회장이 매주 그룹 사장단 회의를 신라호텔 꼭대기에서 밥 먹으면서 진행했었는데요.

그러니 호텔 밥도 맛있어야 하고 늘 호텔이 잘 되어있어야 하니 호텔 직원들이 매사에 초긴장할 수밖에 없어 당연히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지만, 서비스 품질도 올라간 것입니다.

또 전 세계의 일류 호텔들을 연구하고, 그러면서 호텔 서비스가 달라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등 해외에 많은 귀빈들이 신라호텔에 숙박을 했습니다.

특히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 때 해외 손님들이 엄청 많이 방문했는데요. 이때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그러면서 국내 여러 호텔, 특히 신라호텔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올림픽쯤 해서 서울 시내에 대형 호텔들이 너무 많이 생겨나다 보니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 손님들이 줄어드니, 공급과잉으로 가격경쟁이 심화되고 호텔들이 적자가 나는 상황이 퍼져나갔습니다.

호텔신라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단 더 좋은 서비스를 내놓고, 신메뉴도 개발하는 등의 노력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라호텔 뒤에는 삼성그룹이 있어 다른 호텔과 비교해 버틸 수 있는 체력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또 1990년엔 제주신라호텔이 문을 열었고, 91년에는 호텔신라가 상장에도 성공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이부진 대표가 호텔신라에 합류한 이후에는 신라호텔 자체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인 배설을 가진 이부진 대표 본인이 직접 외국 정상들을 영접한 적도 있고, 뉴욕 포시즌스 호텔 디자인을 맡은 유명 디자이너와 함께 호텔 로비부터 객실, 야외 수영장 등등 싹 다 리모델링도 했습니다.

그리고 호텔신라뿐만 아니라 비즈니스호텔로 곳곳에 문을 연 신라스테이와 또 베트남 다낭을 필두로 신라 모노그램 등등 곳곳에 확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편 허가 받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던 한옥 호텔. 서울의 중심부에 한옥으로 지은 럭셔리 호텔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설지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여행업계 전반이 이전에 없던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이 있는 여러 호텔들도 더 못 버티고 호텔이 아니라 다른 용도로 전환하겠다는 경우도 꽤 됐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신라호텔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합니다.

사람이 돈을 쓰고 나서 시간이 꽤 지나면 그때 얼마를 냈는지는 기억 못하는 경우가 있어도 그 돈을 쓸 당시에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고 또 어떤 서비스를 받았는지 그 경험은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거대 글로벌 호텔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처음 만들어질 때 의도했던 것처럼 신라호텔이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얼굴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 지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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