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사실 그는 한국인이었다” 일본 땅 한국인의 정체를 숨기기 바빴던 수많은 사람들과 반대로 한국인의 자존심과 면목을 지킨 사람들

한국이 아닌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교민, 교포, 동포 등등 다양하게 부릅니다.

그중 가장 슬픈 단어는 한자 그 자체로 더부살이 또는 어딘가에 얹혀산다는 설움을 내포하고 있는 교포인데요.

그중 일본에 살고 있지만 한국인의 피가 섞여, 일본 내에서는 일본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한국에서는 한국인으로도 인정받지도 못하면서 양국에서 차별과 편견을 받으며 살아온 ‘재일교포’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1991년 5월 15일, 당시 가이후 도시키 총리의 뒤를 이어 강력한 차기 총리로 부상하던 아베 신타로 전 외무대신이 신부전증 악화로 도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긴급 속보로 전해졌습니다.

아베 신타로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친아버지인데요.

사실 67세라는 아직은 젊은 나이로 사망한 일본 정치인의 사망 소식이 긴급 속보로 타전될 만큼 중요한가 싶지만 아베 신타로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왜냐면 그가 죽기 직전 자신의 가정부에게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은밀한 사실을 털어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말한 이 말이 진실이라면 아베 일가는 한국인 피를 가진 한국인 후손이 되는데요.

사실 아베는 외가도 친가도 전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한국인의 후손입니다.

여기에는 좀 복잡한 가족관계가 있는데요.

아베 신조의 외가 쪽 가문은 ‘사토’라는 성을 쓰는 가문과 ‘기시’라는 성을 쓰는 2개의 정치 명문가입니다.

이 가문 중 ‘사토 노부스케’라는 인물은 사토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기시 가문의 양조로 들어가 ‘기시 노부스케’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됐고 이후 제56대, 57대 일본 총리를 역임했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사토 에이사쿠’라는 인물로 그 역시 정치계로 입문해 제61대, 62대, 63대 총리를 지냈습니다.

전쟁 패배 후 일본의 경제부흥을 위해 맹활약한 총리 2명이 전부 사토 가문에서 태어난 것인데요.

그런데 이 두 형제가 전부 조선에서 건너간 한국계입니다.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평소 자신이 조선 출신인 것을 감추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냈는데요.

이런 사실은 김충식이 쓴 ‘슬픈 열도’라는 책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조선의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다는 점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데요.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심수관’이라는 인물입니다.

김충식은 임진왜란을 전후로 일본 땅으로 건너간 후손들의 발자취를 취재하다 심수관 14대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심수관 가문은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도예가 가문이 되었는데요.

그는 사토 에이사쿠가 직접 써졌다는 ‘묵이식지’라는 액자를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사토씨가 하는 말이 놀라웠어요.

나한테 당신네는 일본에 온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묻기에 4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더니

‘우리 가문은 그 후에 건너온 집안’이라는 거예요.

한반도의 어느 고장에서 언제 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기네 선조가 조선에서 건너와 야마구치에 정착했다는 얘기였지요”라고 전했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사토 가문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정착한 조선인이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사토 에이사쿠의 친형은 기시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기시 노부스케’가 됐습니다. 그리고 총리를 역임했는데 그가 바로 아베 신조의 친어머니 ‘기시 요코’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베 신타로와 혼인해 아들 아베 신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외무상까지 역임했던 아베 신조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평소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에게 “자신은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이라는 점을 자주 털어놨습니다.

지난 2006년 일본의 슈칸 아사히는 커버스토리로 ‘아베 신조 연구-가정부가 본 아베 기시 3대’라는 특집을 내보냈는데요.

인터뷰는 기시 노부스케가 양자로 들어간 기시 가문과 아베 가문에서 40년 가정부로 지냈던 ‘구보 우메’라는 인물과 진행됐습니다.

구보는 아베 전 총리의 부친 아베 전 외무상이 “평소 파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게는 말해줬다”면서 “스스로’ 나는 조선인이다. 조선’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습니다.

아베가 입관했을 당시 그의 골격을 보면서 완전히 한국의 체형인 점을 보고는 그가 진짜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구보는 “아베 가의 본류는 아오모리현이다. 아베 전 외상이 조선이라고 얘기했지만 이는 지금의 북한이 아니라 그 북쪽과 길림성 아래쪽에 있었던 발해다. 11세기 헤이안 시대 무장이었던 아베가 지금 아베 가의 선조와 일치한다”고 설명합니다.

만약이 말이 진실이라면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사토 가문, 발해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아베 가문 모두 한반도가 고향이며 아베는 외가도 친가도 전부 한국인의 핏줄을 가진 것이 되는데요.

물론 총리를 여러 명 배출한 정치 명문가의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해서 이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는 점은 아닙니다.

다만 생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기를 쓰고 우경화를 진행하고 신사참배를 하는 등 일본 우익들의 입맛에 맞는 정치를 했던 것이 자신이 조선인의 후예라는 점을 감추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의심이 드는 것인데요.

한편 일부 재일교포는 정상적인 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어둠의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이를 이겨내고 일본 사회를 쥐고 흔드는 대표적인 기업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창업주가 그러한데요.

재일교포 3세인 1957년생 손정의는 일본 내에서 재계 서열 1위~2위를 다투는 대단한 사업가입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구에서 살다 18살이 되던 해 일본에 강제 징용되어 규슈의 탄광으로 끌려갔는데요.

패망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는 일본 사가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손정의가 태어났을 당시 그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는데요.

할아버지는 광산노동자로 일했고, 할머니는 손수레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가축 사료로 쓰고는 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정도 그리 넉넉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태어난 1950년대 후반은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기 때문에 그 역시 어릴 적 손이라는 성을 쓰지 못하고, 야스모토라는 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손정의가 중학생이 됐을 무렵 아버지 손삼헌는 파칭코를 운영해 큰돈을 손에 쥐었습니다.

집이 조금 넉넉해지자 자식 교육에 신경 쓰기 시작했는데, 고교 입학 직후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다시 가세는 기울었는데요.

이때 가족을 건사하려면 사업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즉각 미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직원 2명과 함께 소프트뱅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 IT 업계를 제패하며 일본의 빌 게이츠라는 별명을 얻었는데요.

또한 그는 단순한 사업가는 아닙니다.

투자가로도 대단한 안목을 가졌던 그. 현재 그의 위치를 가능하게 한 것은 모두 투자해서 비롯됐습니다.

검색엔진의 성공 가능성을 본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창업주 제리 양과 투자협약을 체결해 지분 35%를 취득한 후 야후재팬을 설립했습니다.

그가 투자하고 2주일 뒤 야후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고, 몇 년 뒤 투자금의 360배를 회수해 일본 최고 부자가 됐습니다.

한때는 빌 게이츠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해 세계 1위의 부자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하지만 그에게는 재일교포라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차별과 멸시를 피하고자 청소년기까지는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았으나, 그는 끝내 성씨‘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재일교포는 보통 일본식 이름과 한국식 이름 2개의 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귀화를 할 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요.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일본 사회의 정착하기 위해 일본 이름으로 귀화하지만, 1990년 귀화 당시 손정의는 ‘야스모토 마사요시’가 아니라 ‘손 마사요시’로 귀화했습니다.

즉 자신의 한국성을 지키고 귀화를 한 것인데요.

이에 대해서는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손 씨를 고집했던 것은 꼭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 자존심의 문제였다.

20년 넘게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살았는데 단지 내 신체가 속한 국가가 일본이라는 이유로 왜 그걸 바꿔야 하는 가”라고 했습니다.

최초 그가 ‘손 마사요시’로 귀화를 신청했을 당시, 일본에는 손이라는 성이 없어서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아내와 결혼한 후 자신의 성을 따라 ‘손 우미’가 된 아내 덕분에 손이라는 성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이는 큰 화제가 됐었는데요.

억지로 손 씨 성으로 귀화한 젊은이가 일본에서 재계 순위 1위가 되었기 때문에 큰 파장이 일었다는 후문입니다.

“만일 내가 일본 이름으로 귀화해 성공하고 나중에서야 사실은 야스 모토가 아니라 손이었다는 것을 밝히며 내 이름에 대한 면목이 없을 것 같았다”


-손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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