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 치안, 행정, 경제가 무너진 나라 그리고 해적의 나라 바로 소말리아입니다.
치안이 매우 불안해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소말리아 여행을 금지하거나 최고 수준의 여행 경보를 발령한 상황인데요. 우리나라 역시 소말리아 여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뿔’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소말리아 지형이 코뿔소의 뿔처럼 생겨서 붙은 또 다른 명칭인데요.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수에즈 운하와 연결된 마지막 관문으로 선박 교역의 요충지였습니다.

하지만 이 위치 탓에 소말리아는 식민지를 찾아 나섰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요 타깃이 되는데요. 19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 독일 같은 강대국들은 아프리카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식민지 경쟁은 점차 과열되고 상황이 악화되자 영국과 미국, 프랑스,독일 등14개 국가들은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협상을 통해 아프리카 땅을 나눠 갖기로 합니다. 이 결과 정작 아프리카인들의 의견은 없이 아프리카는 여러 나라로 찢어지게 됐는데요.
이후 1960년 전후로 아프리카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면서 소말리아도 주권 국가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독립된 국가로서의 자유를 느낀 지 채 10년도 되기 전에 문제가 터지는데요.
바로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샤르마르케 대통령을 암살하고 권력을 찬탈하며 자신의 부족에게 요직을 몰아주고, 다른 부족의 재산을 몰수해서 국가에 귀속시키는 등, 다른 부족들을 탄압하며 불만은 점차 쌓여 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소말리아의 역사를 뒤흔든 사건인 오가덴 전쟁이 일어납니다.
에티오피아의 오가덴은 과거 소말리아계 주민이 다수 살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때문에 시아드 바레는 소말리족이 사는 곳을 통합하겠다며 1977년 오가덴을 침공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소련의 대대적인 에티오피아의 지원 때문에 소말리아는 참패하고 마는데요. 당시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는 소련과 우호적인 국가였습니다.
그 때문에 전쟁이 발발했을 때 소련이 중재에 나서기도 했지만 전쟁이 계속되자 소련은 에티오피아 편에 서서 무기를 지원해주었고 결국 소말리아는 전쟁에서 참패했고 이 전쟁은 소말리아 몰락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사망자가 발생했고 농업과 경제가 붕괴되면서 급기야 소말리아는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시아드 바레의 독재는 끝이 나지 않았고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반대 부족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국민들은 더 굶주려 갔습니다.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하게 됐고 그 동안 탄압받았던 여러 부족들이 연합해서 반정부 단체인 ‘통일소말리아회의’가 결성됐습니다.
바로 이 시기가 2021년 개봉했던 국내영화 ‘모가디슈’의 배경인데요. 시아드 바레의 정권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수도 모가디슈는 전쟁터가 돼버린 것입니다.

1991년 반정부 단체는 마침내 시아드 바레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22년간 이어졌던 독재는 막을 내리게 되는데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말리아 국민들의 악몽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독재 정권 타파라는 공통의 목적을 이루자 이들은 곧장 여러 분파로 분열되어 서로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또 다른 내전이 시작됐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반정부 단체의 리더였던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5대 대통령)와 알리 마흐디 모하메드(4대 대통령)의 대립이었는데요.

수많은 부족 군벌들은 모가디슈를 넘어 점차 지역 곳곳에서 무력 분쟁을 벌이게 됐고 소말리아는 전체가 전쟁터가 돼버렸습니다. 여기에 더해 심각한 가뭄까지 덮치면서 약 30만 명의 굶어 죽는 최악의 상황까지 발생했는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 구호 활동을 위해 유엔이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이디드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엔군을 공격했고 이에 유엔군도 반격을 시작했고 이때 미국도 아이디드를 체포하기 위해서 특수부대를 파견했는데요.
그런데 가볍게 생각했던 소말리아 작전에서 민병대의 습격을 받아 헬기 블랙호크가 추락하면서 18명이 사망하는 등 예상치 못한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이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바로 ‘블랙호크다운’인데요. 영화를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언론에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참혹하게 공격당했다는 내용이 퍼지면서 반전 여론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미군은 소말리아에서 철수했고, 1995년 유엔군도 소말리아에서 완전히 발을 빼게 되며, 소말리아는 사실상 무정부상태에 이르게 됐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소말리아는 대부분의 지형이 사막인 탓에 농사가 어려워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요.

하지만 정부가 무너지면서 해군이 사라진 탓에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외국 선박들의 불법조업이 자유롭게 이뤄지며 급격한 어획량 감소로 이어졌는데요.
소말리아 국민들은 유일한 생계 수단마저 빼앗기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 어부들은 총을 들고 자체적으로 해상 경비대를 결성했고 불법 조업을 하는 어선들을 쫓아내며 자신들의 바다를 스스로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정권을 차지하고 있던 이들이 돈을 받고 폐기물을 소말리아 바다에 버릴 수 있도록 허가를 해줬기 때문인데요.
유럽에서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서 1톤당 250달러를 비용이 드는 반면 소말리아에서는 2.5달러면 폐기물 처리가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외국 선박들은 소말리아 해역에 폐기물을 버리기 시작했고, 바다는 납과 카드뮴, 수은과 같은 중금속은 물론이고 방사성폐기물로 오염돼 버렸습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정체모를 병에 시달려야 했고 풍부했던 물고기들도 사라지게 됐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소말리아인들은 생존을 위한 탈출구를 찾아야 했고,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해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항로인 수에즈 운하를 가기 위해서는 소말리아를 거쳐 가야만 하기 때문에 많은 배들은 해적들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배도 수차례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었고, 2011년엔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피랍된 한국인들을 구출한 사례도 있었는데요. 해적이 막대한 수입을 얻게 되자 당시 소말리아에서는 아이들의 장래 희망으로 해적이 꼽힐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소말리아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산업이자 현실이 된 것입니다. 자신의 바다를 지키기 위한 자경단에서 시작됐지만 해적이라는 불법 산업으로 변질된 소말리아의 어부들인데요.
하지만 이들의 시대에도 끝이 다가왔는데요.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소말리아 해적행위가 성공했다는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고 2017년 이후에는 몸값 요구가 성공한 경우도 없었다고 합니다.

해적으로 인한 피해가 점차 커지자 각국에서 군함을 파견해서 단속을 하기 시작했고, 위험 대비 수익성이 낮아지자 해적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소말리아에는 정식 정부가 들어서면서 치안과 경제가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평화가 온 것은 아닌데요. 현재 소말리아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군벌과 정부가 대립하면서 내전과 테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