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당대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았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칭송받은 차범근. 생소한 나라 한국에서 온 그는 독인 구단과 국민들이 인정하는 축구 영웅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는데요.
1980년대에 한국, 한글이 생소한 그 시기에 독일 경기장 전광판에 한글이 등장했는데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는 홈경기장의 한글이 표기되는 새로운 전광판을 설치했습니다. 오직 차범근만을 위해서였는데요.

선수 소개나 골을 넣을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한글로 새겨져 번쩍거렸습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구단을 떠날 때까지 계속됐다고 하는데요.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빌리-브란트-플란츠’역에는 프랑크푸르트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12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각 기둥에는 2013년에 선정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역대 베스트 11을 지칭하는 아인트라흐트 레겐덴 11과 감독의 사진이 새겨져 있는데요. 바로 여기에 차범근이 있습니다.

또한 프랑크푸르트 홈구장인 도이체 방크 파르크에도 차범근의 모습이 있는데요. 구장의 지하 주차장 등에 벽화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레버쿠젠 홈경기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아레나 기둥에 당당히 벽화가 새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구단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팬 투표를 통해 선정한 ‘레버쿠젠 세기의 팀 18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얼마나 차범근에게 열광했는지 볼 수 있는 단면입니다. 은퇴한 지 3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가 뛰었던 구단들은 지금까지도 차범근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SNS에 띄우고 있습니다.
각 구단의 레전드로서 차범근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요. 기업인, 정치인은 물론 축구 전설마저 경의를 표할 정도입니다.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뢰브 감독은 1981년 차범근과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는데요.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차범근의 백업 선수로 뛰었었습니다.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 같은 무리뉴 감독 역시 2007년 첼시와 수원 삼성의 친선 경기에서 만나 차범근을 보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수고했다며 차범근이 그의 등을 두들겨주는 모습이 언론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슈뢰더 독일 총리의 파격적인 발언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 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차붐부터 만나고 싶다”라고 말했기 때문인데요.

다름슈타트 회장 뤼디거 프리취는 경기장에 온 차범근을 직접 찾아가 “전설과 마주하게 돼 큰 영광이다. 차붐이 다름슈타트에서 뛴 사실을 구단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나 레버쿠젠과 달리 단 한 경기만 출전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세계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 또한 “우린 차붐을 막을 수 없었다. 해결 불가능한 존재다”라는 발언을 했는데요. 사실 차범근과 관련된 일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분데스리가 2008-20009 시즌 경기를 그가 독일 현지에서 관전한 적이 있는데요.
모자를 푹 눌러쓴 상태라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광판의 카메라가 그를 비췄고 차범근을 알아본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경계하던 선수들마저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독일인이었다면 100% 국가대표로 발탁했을 것이며, 독일 귀화 요청까지 있었다는 소문이 한때 돌만큼 정말 대단한 명성을 자랑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강한 피지컬을 중시하는 분데스리가에서도 강한 선수로 손꼽혔던 차범근은 거의 흉기나 다름없는 강철 같은 몸에 100m 달리기 11.02초라는 무시무시한 스피드까지 갖췄습니다.

1980년대에 그가 뛴 경기에 대해 다룬 독일 언론 기사를 살펴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독일어로 ‘소용돌이치다. 어지럽히다’라는 단어인데요. 즉 강력한 피지컬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경기장을 휘젓고 다니는 선수였다는 말입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차범근과 함께 뛴 루디 필러는 “좌우 양발로 슛을 쏘았고 헤더, 드리블 등 못 하는 게 없는 선수”라고 글을 평가했는데요. 탱크 같은 몸으로 밀고 다녔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차범근은 신사적인 플레이로 유명했습니다.
현역 전체를 통틀어서 받은 경고는 옐로카드 단 한 장에 불과했기 때문인데요. 거친 파울이 매번 나왔던 당시 과격한 축구를 떠올려보면 차범근이 왜 전설적인 공격수라 불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압도적인 피지컬 능력을 증명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차범근은 구단 선수 중 메디 심볼 훈련을 가장 오래 견뎠다고 하는데요. 10kg의 메디신 볼을 양손에 들고 왕복으로 뛰어야 했으며, 훈련 강도가 극악이라 선수들도 싫어했다고 합니다.
체력이 좋기로 유명한 선수들도 중간중간 쉬거나 중도 포기했다고 하는데요. 차범근을 항상 쉬지 않고 훈련을 마쳤으며, 메디신 볼 훈련 후에도 추가 훈련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독일인들은 그야말로 경악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도 근면,성실이 최고의 미덕 중 하나로 손꼽히긴 하지만, 차범근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는데요.

오죽하면 차범근의 훈련 강도를 낮추기 위해 감독 부크만은 오버 트레이닝을 하면 벌금을 불과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고 하며, 당시 취재를 온 한국 특파원에게 “한국 사람은 모두 저렇게 다부지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차범근 덕분에 많은 소년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고, 그 결실은 오늘날 전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는 젊은 한국인 선수들로 맺어졌습니다.
차범근의 축구 인생은 정말 들여다보면 볼수록 대단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