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한국 스타일 그립습니다…한국인 세계 챔피언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유??

해외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눈부신 발전과 함께 선진국이 된 한국의 지금 모습만을 알아주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한국의 70년대나 80년대 같은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기억해주는 외국인들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2년 현재 격투기 산업은 축구나 야구 같은 메이저 스포츠 못지않은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김동현, 정찬성과 같은 유명 격투기 선수들이 이제는 연예인보다 더 인지도가 높은 정도로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의외로 과거부터 격투기 관련 스포츠에서는 세계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복싱이 있었습니다.

다소 연령대가 낮은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 과거 한국의 복싱 선수들을 그리워하는 해외 네티즌의 글이 신선한 화제를 모았는데요.

“70년대 초반부터 90년대까지 한국에는 훌륭한 복서들이 많았습니다. 장정구, 문성길 같은 복서들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한국인들은 아시아인들 중에 보기 드물게 더 높은 체급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한국 복서들의 직관적인 싸움 스타일과 똑똑한 지능 그리고 미친 투지와 체력은 내가 한국 복싱에 완전히 빠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복싱은 거의 사라졌고, 그 자리는 MMA가 차지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복싱은 가난한 사람들의 스포츠로 간주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격투기 중에 과거 한국의 복싱을 가장 좋아하고 있고 너무나 그때가 그립습니다. 도대체 한국 복싱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70년대부터 한국은 복싱계를 주름잡는 걸출한 스타를 항상 배출해왔고 그 어떤 나라보다 화끈하고 투지 있는 한국인들의 복싱을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안타까워하는 글이었는데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복싱 강국이었던 한국이 갑자기 왜 이렇게 변했는지에 대한 아쉬움의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들이 자신도 한국인들의 복싱 스타일을 너무 좋아했다며 각자의 생각을 남기기 시작했는데요.

“한국은 3~4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부유해졌다. 한국인들의 인구통계와 수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싱은 정신력이야. 지금 한국은 워낙 부유한 나라지, 그때만큼 정신력을 무장한 선수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정말 배고프고 힘들었던 7~80년대에 몸 하나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복싱이었고, 그만큼 절실했던 한국인들이었기에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유명 선수들이 등장했지만, 이제 한국은 반대로 너무나도 잘 사는 나라가 되었기에 가난의 스포츠라고 불리던 복싱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무술인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복싱의 인기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는데요.

김득구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야기하며 이로 인해 한국인들이 점점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회피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었습니다.

구두 닦기와 허드렛일이라며 산전수전 끝에 프로가 된 김덕구 선수는 삽시간에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지만,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레인 맨시니 선수와의 타이틀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었고, 26세라는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희망이었던 김득구 선수의 죽음은 전 국민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었는데요. 말 그대로 가난했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한국 복싱 선수들의 세계적인 활동은 많은 희망을 안겨다 주었는데요.

실제로 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명 ‘헝그리 정신’을 가진 한국의 복싱 선수들은 믿을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국민들의 희망이 되어주었습니다.

한국의 권투하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홍수환 선수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멘트입니다.

1974년 4월 당시 동양 챔피언이었던 홍수환 선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원정 시합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15라운드 동안 4번이나 다운시키며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원정 경기에서 타이틀을 획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홍수환 선수가 인터뷰에서 어머니에게 했던 말이 바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 복싱은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는데요. 원정 경기에서도 당당히 실력으로 챔피언이 되는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한국 복싱계는 유제두, 염동균,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 김태식 등 챔피언을 연거푸 배출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 80년대 복싱 붐을 이어받은 선수는 장정구 선수가 아닐까 싶은데요. 당시 세계 챔피언은 파나마의 사파타였습니다. 장정구는 경기 초반부터 사파타를 거치게 몰아붙이며 맹공을 가했고, 3분여 만에 사파타가 백기를 들며 세계 복싱계에 일명 ‘짱구 시대’의 화려한 개막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장정구 선수는 WBC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85년 86년 87년에 걸쳐 3년 연속 수상했고, 2000년에 WBC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경량급에 장정구가 있다면, 미들급에서는 박종팔 선수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한국 최강의 주먹 일명 ‘동양의 호랑이’라 불리던 박종팔 선수가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건 1984년 새롭게 신설된 ‘국제복싱연맹’에서였습니다.

당시 슈퍼미들급 초대 챔피언인 머레이 서덜랜드와의 일전에서 3차례 다운을 주고받는 난타전을 벌였고 결국 11라운드에 박종팔 선수가 특유의 몸통 공격으로 KO승을 거두며 정상이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선수들의 투혼이 있었기에 한국 복싱계가 빛을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은데요. 외국인들도 그런 한국의 복싱 영웅을 그리워하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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