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게” 도대체 어떻게… 전 세계가 놀란 한국 국방력 레전드 사건


2010년 12월 4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에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김관진은 참 군인다운 모습으로 “자동으로 응징한다. 적이 굴복할 때까지”라며 늘 단호한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이렇게 장관 부임부터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주며 승승장구하던 그때. 취임 이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아주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소말리아 해적에 의해 우리나라 선박인 삼호 주얼리 호가 납치된 것인데요.

사실 삼호 주얼리 호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도 우리나라 선박은 소말리아 해적에 주 타깃이었습니다.

납치를 해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하기 위함이었는데요.

그리고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대부분 인질들의 몸값을 지불하는 형태의 협상을 진행했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말리아 해적들 사이에서 한국 선박은 돈이 된다 뭐 이런 소문이 났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삼호 주얼리호가 납치 되기 전까지 한국 선박은 총 7번이나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 됐는데 이 중 6번이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경우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2010년 11월에 납치돼서 216일 만에 풀려난 삼호 드림호는 몸값으로 950만 달러(한화 약1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지불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2007년에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샘물교회 신도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소말리아 해적과는 크게 연관은 없지만 인질들을 납치해 대가를 요구했던 사건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당시 아프가니스탄이 여행 자제구역이었습니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들이 그 당시에 수감 중인 동료들을 석방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납치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한국 정부 측에서 아프가니스탄 여행 자제를 부탁했는데, 샘물교회 신도들이 이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우려대로 선교활동 중 탈레반에게 납치 당하고 예상대로 탈레반은 무리한 요구를 하게 되는데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한 한국군 모두 철군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수감한 탈레반 인원 전원 석방해 달라”

말이 안 되는 조건이지만 근데 또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이다 보니, 결국 당시 합참의장으로 있던 김관진 합창의장은 특전사 요원들을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급파합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상 상당한 피해를 각오했다 보니 결국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협상을 통해 인질을 빼 오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는 탈레반과의 협상을 진행했는데, 결국 우리 국민 2명이 사살된 뒤에야 아랍에서 추정한 몸값이 200만 파운드(한화 약 378억)를 주고 빼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김관진 합참의장은 이럴 바에는 특수부대 보내서 싹 쓸어버리고 인질 구출하는 길을 낮겠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결국 2011년에 벌어진 삼호 주얼리 호 납치 사건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작전을 전개합니다.

그런데 이때가 국방부 장관으로 취임한 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됐던 시점이라 김관진 장관의 측근들도 몸 좀 사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에 몸을 사리는 인물이 아니었는데요.

그렇게 그는 군사작전을 계획하게 되고 이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인명피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동안이나 고심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은 김관진 장관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는데요.
“인명 피해는 어느 정도 예상하나요?”
김관진 장관은 “사상자가 2명 이상 나오면 사퇴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다가 새벽 작전을 진행하는 걸로 하세요”

그렇게 아덴만 여명 작전이 시작됩니다.

배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들은 배를 끌고 소말리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해군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삼호 주얼리 호의 석해균 선장은 조타실에 문제가 있어 배를 멈춰야겠다며 기지를 발휘합니다.

그리고 영어로 해운사 측과 통화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한국어로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이었던건 석해균 선장이 기관장에게 지시한 내용이었는데요.

“엔진오일에다가 빨리 물 타”

그렇게 선박은 서다가다를 반복하며 제대로 된 속도를 내지 못했고, 결국 해군은 배가 소말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인근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때 옆으로 지나가는 몽골 상선을 추가로 뺏으려고 했던 해적 4명이 삼호 주얼리 호를 떠나 몽골 상선으로 향했는데요.

해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해군은 링스 헬기와 고속단정 2척을 진입시켰고 위협 사격을 통해 해적선을 무력화 했는데요.

결국 이 교전으로 인해 적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1차 작전에서 우리측 부상자가 생기게 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기로 합니다.

그리고 곧 시작된 2차 작전, 일단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최영함에서 배 근처로 함포사격을 하면서 이목을 끕니다.

그 사이 UDT/SEAL 팀은 고속단정 3척에 나눠타서 배에 접근해 승선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인질 구출 및 진압 작전을 펼치는데요.

장장 5시간 동안 작전이 이어집니다.

결국 해적들과의 교전 끝에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하게 됩니다.

이렇게 아덴만 여명 작전은 아군과 인질 그 어느 쪽에서도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채 성공적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UDT/SEAL 팀에서 3명의 부상자와 시간을 지연하는데 성공한 석해균 선장 역시 총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는데요.

곧바로 해군 장병 3명의 피를 수혈 받고, 헬기를 통해 오만 남부의 한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직 의료진으로는 그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는데요.

결국 아주대학교 의대 이국종 교수팀이 현지에 급파되어 오만에서 수술을 진행하긴 했지만, 석해균 선장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한국으로 옮겨서 수술을 진행해야 살릴 수 있는 상황에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반 여객기와 군용기로는 환자를 이송할 수 없어 결국 의료 전용 비행기로 이송을 해야 해서 겨우 스위스의 의료 비행기를 구했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대금 지급 보증 확답이 늦어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때 이국종 교수가 한마디 합니다.


“내가 보증 설 테니까 빨리 환자를 이송하시죠”

이 가격이 무려 4억 원이었는데요.

결국 이국종 교수로 인해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그렇게 모두의 노력으로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채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매번 협상에 끌려 다니며 거액의 돈을 지불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 첫 해상 인질 구출 작전이 전 세계적으로 이런 대성공을 맞이했던 것인데요.

‘해상에서 인질극을 벌였는데 사망자가 없었다’ 이런 일은 극히 드문 것이고 이 부분에서 아덴만 여명작전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으며 아직도 회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