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비벌리 힐튼호텔에서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매년 최고의 작품과 배우를 선정하는 영화상으로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전 세계를 대표하는 시상식으로 꼽히는데요.

당연히 비영어 작품상 후보인 박찬욱 감독의 수상 여부에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작년 한 해 국내외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수상작은 ‘아르헨티나 1985’로 확정돼 헤어질 결심은 아쉽게 트로피를 놓치게 됐습니다.
지난 2020년 골든글로브 비영어 작품상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1년에는 영화 ‘미나리’가 수상해 다수 해외 매체들은 ‘헤어질 결심’이 2022년 비영어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작품성과 화제성에 비해 조금은 실망감이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주인공은 박찬욱 감독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박 감독이 레드카펫에 등장하자 미국 주요 외신들의 관심도 쏟아지며, 특히 그가 미국에서 촬영 중인 차기작 HBO 맥스 시리즈 ‘동조자’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번 작품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 은퇴 이후 택한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극 중에서 하원의원, 미 CIA 요원, 영화감독 등 5가지 역할을 소화할 것으로 알려지며, 오랫동안 아이언맨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큰 이미지 변신이 될 작품으로 예상되는데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드라마를 통해 현지 최고 출연료인 해당 200만 달러(한화 약 26억원)를 받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박 감독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정말 놀라운 배우이자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라며 “그와 함께 일하는게 정말 기쁘다”고 말하며 즐겁게 작품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한 남자가 레드카펫에 난입합니다.
그러더니 박찬욱 감독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큰절을 합니다.

순간 레드카펫을 촬영하던 카메라와 질문을 이어가던 기자들에게서는 큰 웃음소리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요.
박 감독에게 큰절을 한 사람은 바로 ‘나이브스 아웃’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등 수많은 작품으로 유명한 라이언 존슨 감독이었습니다.
기자들이 라이언 존슨 감독에게 왜 큰절을 했는지 묻자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전 세계 영화계에 폭탄 같은 충격을 엄청나게 안긴 작품이기에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면 자동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는데요.

박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고 함께 포즈를 취하며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평소 박 감독을 존경해 왔으며 한국 영화와 한국문화에 대한 경의를 표해 왔는데요.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박찬욱 감독의 인맥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큰절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감독 중에서도 특히 봉준호 감독의 팬이라고 밝혀온 그는 영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비영어 작품상을 수상하자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기생충 특별시사회가 열렸을 때 봉 감독과의 대담 진행자로 라이언 감독이 나왔었는데요.
자신만의 주관적인 연출관과 스토리텔링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최고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두 감독이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는데요.
대담이 시작되기 전 라이언 감독은 봉 감독이 입장하자마자 큰절을 올립니다.

그는 봉 감독을 보자마자 너무 기뻐하고 웃으며 “마침내 봉준호 당신의 미친 두뇌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봉준호 감독이 한국 영화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서양과 달리 한국은 선후배 관계 같은 게 있어서 내 영화 연출부 조감독 출신이면 다음 영화 때 내가 가서 도와주는 품앗이나 가족 같은 문화가 있다”고 말하자
라이언 감독이 “그럼 나도 다음 작품에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행사가 끝나면 내 명함을 주겠다”라고 말해 관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큰절로 시작된 대담은 끝날 때까지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였습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이제 한국 감독이나 한국 배우와 작업하고 싶다는 러브콜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설국열차’에 이어 로버트 패틴슨 주연에 ‘미키17’을 연출해 내년 3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 역시 영국 BBC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로 활발하게 해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글로벌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를 통해 인정받은 우리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도 이어집니다.
‘이터널스’에 출연한 마동석에 이어 박서준이 마블 영화 ‘더 마블스’에 출연 중이며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스타 이정재도 스타워즈 시리즈 ‘어콜라이드’를 촬영 중입니다.

또한 젊은 한국계 미국인 창작자들도 국적을 떠나 K-콘텐츠에 또 다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이민사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는 원작 소설가 이민진을 포함해 작가와 연출자 모두 한국계 미국인이었는데요.
최근 미국 비평가들이 주관하는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드라마상을 수상하며 역시 한국 이야기가 통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콘택트’ 등 수많은 흥행작을 제작해 기반을 다진 40년 경력의 미국 영화 프로듀서 린다 옵스트는 망해가는 할리우드의 돌파구는 바로 한국 영화라고 말합니다.

2022년 미국 영화의 박스오피스 매출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약 33% 적은 73억 달러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녀는 “한국 영화는 완전히 신선하고 독창적이에요. 전 세계가 한국이 만든 영화에 목말라 하고 있죠. 지금 세계는 같은 정서적 언어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무언가가 필요하고 K-영화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현재 ‘국제시장’ ‘해운대’ ‘두사부일체’를 연출해 흥행에 성공한 윤제균 감독과 함께 K-팝 아이돌 그룹의 로드무비 ‘K-팝: 로스트 인 아메리카’를 제작 중에 있습니다.

린다 옵스트는 “지금 할리우드는 모두가 오징어게임 같은 한국의 콘텐츠를 쫓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계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결국 목적지는 ‘한국’ 한 단어가 되더군요”라고 말합니다.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K-영화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