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거짓말 다 들통!!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모두 한국인이 지은 것 강대국 된 한국 일본 역사 추적 들어간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국제관계학 교수인 라문 파체코 파르도 박사는 최근 발행한 책에서 한국은 과거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였지만 지금은 고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더 이상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할 제3의 고래가 됐다고 언급했는데요.

파르로 박사는 한국이 반도체, 자동차, 선박, 배터리, 휴대폰 등을 발판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됐고 BTS를 앞세운 K-팝 음악과 ‘기생충’을 필두로 한 영화 등 놀라운 문화 소프트 파워를 이뤄내 마침내 진정한 강국으로 우뚝 올라섰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한류 연구학자인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 교수 역시 같은 주장을 펼쳤습니다.

리처드 교수는 한국이 21세기 지구촌 문제 해결의 답을 줄 수 있는 나라이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습니다.

리처드 교수는 특히 한국인들의 높은 도덕성에 주목했는데요.

“한국은 공동체 지향적인 도덕관을 가져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이러한 정신이 한국에 깊이 뿌리내려있어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는 한류 문화가 한국만의 독창적인 입지를 만들어주는 자산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국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한국 역사를 중국과 일본이라는 고래 사이에 낀 새우라고 소개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5천 년 한국의 역사가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에 의해 좌우되는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역사라는 인식이 전 세계 문헌과 웹사이트를 통해 지속해서 확산이 된다면 이를 통해 한국 역사를 대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약소국이라는 편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독자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국들에 억압만 받는 역사도 아니었습니다.

광개토 태왕에 고구려와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발해의 역사만 봐도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온 민족입니다.

‘고래 사이 낀 새우’라는 표현은 힘이 센 사람 2명이 싸우는 데 힘이 약한 사람이 그사이에 끼어 아무 관계 없이 피해를 입는다는 뜻으로 쓰이는데요.

따라서 세계인들에게 이 속담은 개개인의 일상사를 대상으로 유래된 말이지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의 입장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소개해서는 안 된다고 바르게 알려야 합니다.

특히 한국을 세우라 비하하며 상대적으로 일본과 중국을 거대한 고래라고 비유하고 있지만, 전체 역사에서 일본을 그나마 강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건 일제 강점기라는 매우 제한된 시기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한국의 5천 년 전체 역사에서 외교, 문화, 정치, 군사적으로 한국에 고래로 비유할 만큼 영향력이 큰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삼국시대, 백제는 불교와 학문, 각종 문물을 일본에 전했고 이 문물을 들이고 고대 일본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찰인 아스카데라는 백제인의 기술로 만들어졌고, 백제와 가까운 규슈 일대뿐만 아니라 오사카 지역에도 남백제 초등학교, 오사카 철도의 백제 역, 오사카 시내버스 정류장인 백제, 백제 대교, 백제교, 백제 신사 등이 있어 이곳이 과거 백제 영향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들은 일본에 넘쳐나는데요.

특히, 평온함과 함께 신비감을 자아내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우리 국보의 대표 얼굴’로 이야기될 만큼 한국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걸작입니다.

조화로우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신체와 선명한 이목구비, 자연스럽고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 주름 표현은 신라인의 놀라운 주조 기술을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편,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두 불상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외관이 비슷합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일본 국보 제1호를 보고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예술품’이라고 극찬했지만, 이 불상은 신라에서 만들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 서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모든 대부에게 ‘나에게 존귀한 불상이 있다. 누가 이 불상을 가져다 예배하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진하승이 나와 제가 예배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즉시 불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한일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이 불상을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반가사유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 스이코 일왕 때 왕을 대신해 섭정을 했던 인물로서 ‘한국계 혈통’으로 유명합니다.

진하승 역시 교토의 호족으로 ‘신라인’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목조 불상의 나무는, 일본에는 없고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적송입니다.

이를 근거로 한국 국보 83호와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은 6세기 초 신라에서 조성됐고 이중 목조반가사유상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발표도 있었는데요.

1994년 일본 국보수리소 다카하시 준부도 ‘두 불상은 같은 공방에서 한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우리 국보 83호가 일본 국보 1호의 원형임을 확고히 했던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한국 국보 83호와 일본 국보 1호 목조반가사유상은 6세기 초 신라에서 조성됐고 이중 목조반가사유상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발표도 있었는데요.

1994년 일본 국보수리소 다카하시 준부도 ‘두 불상은 같은 공방에서 한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우리 국보 83호가 일본 국보 1호의 원형임을 확고히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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