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세계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떠오르게 하면 한식, 한복 같은 전통 있는 것들부터 한류, 반도체 같은 최신 기술과 유행까지 이제 누군가 대한민국에 대해 묻는다면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또한 한국의 무술에 대한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로 대답하거나 조금 더 안다고 하더라도 택견 정도만을 언급하는데요.

물론 태권도와 택견은 훌륭한 우리 무술로 자랑할 만한 우리의 전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무술 중 가장 치명적이고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잘 거론되지 않는 무술이 있는데요.
바로 한국의 전통 한궁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 하면 활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정작 활을 쏘는 궁술은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올림픽의 종목인 양궁 때문에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국궁보다는 스포츠화된 양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인데요.

하지만 궁술은 엄연한 무술이며 태권도와 함께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전통 무술입니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서양사람들은 아시아에서 활을 이야기하라면 일본의 궁도를 떠올립니다.

멋있게 차려입은 궁사들이 차분한 자세로 독특한 생김새의 활을 쏘는 것이 아시아의 멋이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궁도는 사실상 억지스러운 규칙으로 만들어진 가짜입니다.
일본에서 궁술은 조총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상당히 중요한 무술로 여겨졌으며, 이후로도 큐도우 우리말로 궁도라 불리며 정신 수양을 위한 교양 문화로 살아남았습니다.
이 큐도우는 다도와 함께 일본 문화 상징으로 자리매김 했는데요.

학교마다 궁도장을 두고 학생들이 궁도를 연마하는 것이 만화나 드라마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 알려지면서 막연하게 아시아 문화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서양인들이 궁도에 입문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서양에서 아시아의 궁술을 이야기하면 큐도우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요.
그런데 큐도우는 사실 궁술이라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변형된 사교용 문화에 불과합니다.

큐도우에 쓰이는 일본 활의 장력은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어린 여성들도 활을 당길 수 있도록 활 시위의 힘을 낮췄기 때문인데요.
그 때문에 정식 큐도우 시합장의 길이는 불과 28m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거리에서조차도 화살을 맞추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데요.

때문에 큐도우는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히는 것보다 과녁을 쏘기 위해 일어서서 조준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나 우아하게 일어나서 아름다운 자세로 화살을 쏘았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는데요.
당연히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지극히 주관적인 시합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잦습니다.
90m 떨어진 과녁을 정확히 명중시켜야 하는 양궁과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궁술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궁도에 가까운 모습이 된 것인데요.

그렇다고 원래 일본 활이 강한 것도 아닙니다.
일본의 활은 여러 재질로 만들지만 우리 활에 비해 지극히 약한 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습도가 높은 일본 환경에서 활에 적합한 재료가 없어서라고 변명하는데요.
궁여지책으로 활의 위아래 길이와 크기를 다르게 한 기형적인 형태의 장궁으로 위력을 보강했습니다.
그럼에도 100m를 날아가면 많이 날아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형편없는 사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력도 그만큼 약한데요.
과거 사무라이들이 갑옷 안에 매끈한 비단옷을 덧입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화살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국궁과 궁술은 일본활과 큐도우에 비교하는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훌륭합니다.
현대 국궁장에서 과녁과 화살을 쏘는 사대 사이의 거리는 145m이며, 국궁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활의 장력은 45파운드 정도로 20kg 정도의 당기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진짜로 전장에서 쓰였던 본격적인 국궁에 비한다면 그리 대단한 위력이 아닙니다.
조금 체력이 좋은 남성의 60파운드 정도의 국궁을 쏠 경우 직사로 200m 떨어진 과녁을 맞추는 것이 가능합니다.
활은 곡사로 쏘아 보낼 때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대 사거리는 그 이상이라는 말이 되는데요.
놀랍게도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사용하던 국궁의 평균 장력은 75~90파운드 사이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활은 물소 뿔을 통으로 사용한 각궁이었으며, 그다음으로는 물소 뿔을 쪼개어 사용한 흑 각궁과 황소 뿔을 사용한 향 각궁이 인정받았습니다.
여름에 활의 접착제로 쓰인 민어 부레풀이 녹을 수 있어 보조로 목궁이나 철궁을 들고 다니기도 했는데요.
그 어떤 활도 일본 활에 비한다면 압도적인 사거리와 위력을 자랑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인들도 우리 활의 대단함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지의 활을 리뷰하는 여러 궁사들이 한국의 활을 쏠 때마다 괴물 활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엄청난 극찬을 쏟아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국궁을 스포츠로 즐기는 사람은 일본의 큐도우를 즐기는 이들보다 훨씬 적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장소인데요.
너무 위력이 강한 활이다 보니 팔심이 좋아야지 즐길 수 있으며, 적어도 150m 길이는 되는 넓은 사격장 있어야 활을 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에서 이런 장소는 찾기 쉽지 않은데요.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우리 국궁과 궁술은 현재 세계인들의 새로운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궁이 일본의 큐도우 처럼 어린 학생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세계의 여러 사람들에게 더 널리 우리의 국궁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