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내에서는 학자들조차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제외시킨 일본 교과서 개편에 대해 비판할 정도인데요.

이미 국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 실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뻔뻔함으로 일관하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인데요.
최근 동북아재단이 마련한 학술대회에서 와타나베 미나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 사무국장은 지금 일본 교과서 여러 곳에서 ‘종군’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예 빠졌고, ‘조선인 여성’이라는 표현 역시 ‘일본,조선,중국 등의 여성’으로 애매하게 바뀌었으며 세계사 교과서 7권 중 ‘위안부’ 관련 기술을 넣은 곳은 두 곳 뿐이라고 오류를 지적했습니다.

와타나베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일본 교과서에서 더 이상 ‘위안부’ 문제가 어떻게 발생한 전시 성폭력 문제인지를 다루지 않고 있으며, 이것은 학계의 연구 성과도 반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가토 게이키 히토쓰바시대학 교수 역시 일본 대부분의 교과서가 한반도 침략을 ‘한국병합’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한제국의 패망 혹은 강제적인 식민지화의 실태를 덮기 위해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일본 학자들조차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이유는 독일 등 유럽의 많은 지식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지난 6월 독일 카셀대학 본관 앞에서는 평화의 소녀상을 영구히 설치하는 제막식이 열렸고, 그 옆에 후원자 26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을 설치했습니다. 독일 대학의 캠퍼스에 소녀상이 설치된 것은 카셀대학이 처음입니다.

지난 8월 14일은 제10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이날이 위안부 기림일이 된 이유는 고 김학순 할머니가 바로 1991년 8월 14일, 반세기 동안의 침묵을 깨고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라며 일본군으로부터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8월에는 호주에서도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가 열렸는데요. 이날 참석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도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에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전시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세계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는 소녀상 관람객을 노린 테러까지 발생해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2022년 8월 25일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 중인 나고야시청에 폭발물이 배달된 것인데요. 나고야시장은 시청과 자신의 사무소에 폭죽이 든 수상한 우편물 3건이 배달됐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에서의 소녀상 전시는 매번 극우세력들의 방해로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7월에도 나고야시의 전시장 건물로 폭죽이 배달돼 행사가 중단됐고, 2019년에는 일본 최대 국제 미술전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소녀상을 전시했는데, 이때도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휘발유 통을 가지고 전시장에 가겠다’는 팩스가 오는 등 협박과 항의가 이어졌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 폭죽이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장난감 폭죽이 아니라, 폭발물로 보이는 물체와 전선까지 동반되어 있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개봉할 때 폭죽이 터지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명백히 사람을 노린 테러였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보기 위해 전시회를 찾는 일본인들이 늘면서 이들을 노린 극우세력의 테러도 더욱 집요해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데 일본의 바람과는 달리 얼마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결정적인 자료가 해외에서 공개됐습니다.
일본의 전쟁자금을 끈질기게 추적한 네덜란드 기자가 일본이 위안부로 벌어들인 수익이 전쟁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사실을 찾아낸 것입니다.

네덜란드 탐사보도 전문 그리셀다 몰러만스 기자는 국제적인 비자금을 추적하는 전문 웹사이트 ‘팔로우 더 머니’에 일본군 전쟁자금의 행방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이 밝혀낸 자료는 네덜란드 제국의 식민지였다가 일본이 침탈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이 위안소를 운영하며 벌어들인 자금 즉,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주어야 할 자금이 예치된 계좌 내역이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이 문제에 왜 관심을 가질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놀랍게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는 네덜란드인도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1992년 얀 루프 오헤르너 할머니가 인도네시아 위안소에 끌려갔던 과거를 고백하면서 비로소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조사 결과 자바와 수마트라섬에서 최소 65명에서 많게는 300여 명에 달하는 네덜란드계 여성이 위안부로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네덜란드의 그리셀다 몰러만스 기자가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일본은 전쟁 중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조직적으로 위안소를 운영했고 위안소에서 벌어들인 돈은 다시 일본의 전쟁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셀다 몰러만스 기자는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위안부’라는 용어는 일본이 붙인 것으로 사실은 강제 매춘이었습니다. 피자인 여성과 10대 소녀들은 대부분 일본에 의해 조직적으로 끌려왔으며 일본군이 주둔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존재했습니다.
위안소는 일본제국의, 일본제국에 의한, 일본군을 위한 전쟁 지원 조직인 것입니다.

일본군 병사들이 위안소에 가면 위안부들에게 돈을 냈지만 그 돈은 위안소 업주가 가져갔습니다. 업주는 그 돈을 타이완 은행에 예치했으며, 위안부들이 돈의 행방을 물으면 업주는 ‘너희들에게는 빚이 있다. 너희들이 입는 옷과 화장품값 등으로 다 나간다’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치되어있던 돈은 위안부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다시 일본의 전쟁자금으로 쓰였습니다.

일제는 위안소를 국가 전매사업으로 운영하여 군인들에게 주는 월급이 ‘위안부’에 대한 ‘화 대’로 지불되고, 그 화대는 일왕이 주주인 요코하마 스페시 은행과 타이완 은행에 예치되어 전쟁 자금으로 쓰이는 순환구조를 이뤘다는 것이 이 탐사 전문기자들이 밝혀낸 사실입니다.
위안부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 예치금은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한화로 약 2천 93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일본군이 떠나면서 수십만의 종군 ‘위안부’는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그들이 보상받은 돈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 와중에 종군 위안부들은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인류에게 또다시 종군 위안부의 역사가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실체를 명확히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함께 정확한 보상을 하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