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동포, 재일교포, 재중교민 등등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부르는 다양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 중 ‘교포’라는 단어는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그 나라 국민으로서 법적 지위를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말은 서러움과 아픔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더부살이’ 즉, 남의 집에 얹혀산다는 의미인데요.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얹혀산다는 서러운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 있는데요. 바로 ‘재일교포’입니다.
재일교포라는 용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익숙한 용어지만, 그들이 일본에 살며 겪는 편견이나 차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달콤한 말로 꾀어 군대로, 군수 공장으로, 해외로 엄청난 수의 조선인들을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했지만 다양한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일본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고 남은 생을 일본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을 ‘재일교포’라 부르는데요.
하지만 이들은 한국인이면서 일본에 산다는 이유로 한국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 불리며 온갖 멸시와 따돌림을 이겨내야 하고,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모호한 정체성은 어린 시절부터 그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많은 재일교포들이 재일교포임을 숨기거나 차별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어둠의 사회로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요.
2세, 3세로 이어지며 완전히 일본 사회에 녹아들어도 차별은 여전합니다.

대학을 나오고 유학을 다녀와도 교포들은 교사와 경찰, 간호사 등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에 사는 재일교포는 정상적인 사회로의 진입이 상당히 차단되기 때문에 가장 쉽게 진출하는 곳이 ‘파친코’ 사업이라고 합니다.
파친코는 일본의 국민오락을 말하는데요. 도박이 불법인 일본에서 파친코는 카지노로 분류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운영되며 게임 방식은 간단합니다.
구술을 기계로 튕겨 구멍에 넣은 후 그림의 짝이 맞으면 당첨금을 받습니다.
이 단순한 게임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모든 걸 잃은 일본인들이 허탈함과 허전함을 파친코 기계에 쏟아 넣으면서 붐이 일었습니다.

게임에 사용되는 쇠구슬도 전쟁 후 군수물자인 베어링을 재활용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일본인들이 파친코에 열중한 이유는 게임에 빠진 그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슬이 구멍에 들어가고 그림이 맞으면 구슬이 쏟아지는 소리에 불안을 떨쳐 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일교포 중 파친코 경영자가 70%가량 된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많은 이유는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대기업은 커녕 일반기업에 취직도 힘든 상황에서 파친코 사업은 일본인들이 사랑하지만 꺼리는 사업입니다.

어두컴컴하고 음산한 곳에서 벌어지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있어 잘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대출도 쉽지 않으니 가장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분야였던 것인데요.
그런데 재일 교포 중 이 파친코 사업으로 일본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던 전설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마루한’이라는 파친코 회사 창업주 ‘한창우’ 일본명 ‘한찬우’입니다.
사실 소설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가 일본에서 4년을 보낼 때 수십명의 재일교포를 인터뷰한 후에 소설을 집필했는데,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바로 한창우 대표입니다.

그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듣고 소설을 구상했다고 하는데요.
원래 일본에서도 파친코는 한국의 성인 오락실처럼 음산한 분위기였는데 이를 양지로 끌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마 김연아 선수의 팬이라면 선수 시절 그녀가 경기에 등장할 때 광고판에 등장하던 ‘마루한’이라는 단골 간판을 기억하실 겁니다.
‘마루한’은 파친코 회사로 게임에서 사용되는 구슬을 뜻하는 일본어 ‘마루’와 한창우 회장의 ‘한’을 합성해 만든 이름입니다.

그는 일본 내에서 가장 큰 파친코 그룹이자 한 때 일본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던 전설적인 재일교포입니다.
현재는 35위로 하락해있는데요. 이는 일본 내에서 파친코 산업이 전체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30년 12월 17일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그는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뒤 2개월 뒤 일본행 밀항선을 탔습니다.
일본 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정착한 큰형의 권유를 따라 큰 인물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떠났습니다.
조센징이라는 멸시와 가난함을 이겨내고 미친 듯이 공부한 끝에 명문으로 통하는 ‘도쿄 호세이’ 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했는데요.
졸업 후 취업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인 졸업생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마당에 한국 국적인 그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없었고 결국 매형이 ‘미네야마’라는 소도시에서 운영하던 파친코 점포를 맡게 됩니다.
1952년부터 그가 파친코에 인연을 맺게 된 것인데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매형에게 점포를 인수한 후 그는 26살 되던 해 마루한을 설립합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파친코 승률을 조금 더 높였는데요. “잘 터진다”는 소문이 돌자 손님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20대에 불과하던 기계는 40대로 늘었고, 지속해서 사업을 확장한 그는 32살 때 빌딩을 짓고 150대까지 기계를 늘립니다.
그는 사실 볼링 사업에 손을 댔다가 1,200억원이라는 빚을 지고 손을 털었는데요. 불과 10년 만에 이 빚을 모두 청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보자면 10가지 일을 평균적으로 잘하는 것보다는 한 가지 일을 남들보다 10배 더 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는 파친코 분야에서 마스터가 되기로 결정했고, 끝없는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볼링 사업이 망한 후 그는 망해가는 파친코 점포를 인수해 키우고, 다른 점포를 인수해 키우면서 마스터가 되어갑니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듯 그는 “점포 한 곳을 아주 잘 운영하는 사람은 다른 점포도 빠른 속도로 늘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이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 수익은 “J자형”으로 수직 상승하게 되는데요. 불과 10년 만에 1,200억 원을 모두 갚은 것도 이 원리를 터득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94년까지 지방에서 파친코 사업을 운영하다 이듬해 도쿄에 진출하게 되는데요.
의도적으로 도쿄 최고의 번화가 시부야 7층 건물 중 6개 층에 매머드 점포를 개설했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사업이 기업화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도쿄점 오픈은 일본 언론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연일 언론을 중심으로 대서특필 됐는데요.
이때 한 회장의 인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는 “일본 파친코가 부정적인 도박장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대화된 건전 레저 문화’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봤다. 그렇다면 내가 한번 바꿔 보자고 결정합니다.
이후 모든 수입과 지출을 실시간 단위로 전산처리해 세무 당국에 제출했고,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마루한은 1년 매출이 13조원을 기록했습니다.
1990년대부터 일본은 장기불황에 빠졌지만 마루한만큼은 고도성장을 이뤄냈고, 최전성기에는 점포 317개, 10만대 이상의 파친코와 슬롯머신 기계, 종업원 19,600명을 거느린 대기업이 됐습니다.
2015년에는 포브스 선정 일본 재계 순위 7위로 파친코 업계의 리더가 됐습니다.
사실 현재 그는 일본인입니다.

2011년 일본으로 귀화를 하게 됐는데요.
아무래도 일본 굴지의 파친코 창업주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일본 정부에게는 탐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앞장서 그에게 귀화를 권유했는데요. 그러면서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라는 압박했지만 그는 한국식 이름을 허용하지 않으면 귀화하지 않겠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그는 ‘한찬우’라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하게 됐는데요.
이는 일본에서 ‘ㅇ’을 발음할 수 없어 ‘ㄴ’을 쓴 것입니다.

그는 일본으로 귀화한 것이 사업을 성장시키거나 일본인으로 태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당히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국적과는 무관하게 그는 자신이 한국인의 뿌리임을 잃지 않고 있으며, 국적과 민족은 별개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일교포와 밀접하게 관련된 이 파친코 산업은 애플 TV에 ‘파친코’를 통해 재조명되며, 재일교포들이 겪었어야 했을 온갖 차별이 수면 위로 떠 올랐고,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일본에서 이 콘텐츠에 ‘사기’ ‘허구’라든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것도 창피한 민낯을 가리고 싶은 심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