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자 충격 폭로!! 신성하게 떠받치고 섬긴 이것이 한국 것으로 밝혀지자 그럴 일 없다며 아연실색하는 일본


일본의 경우에는 국교가 따로 없습니다. 신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 등의 특정한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만물에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 일본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인데요.

그렇기에 일본에는 수많은 신사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신사는 8만 8천곳에 달하며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사들까지 포함하면 2~30만 군대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신사 중에서도 1% 안에 드는 신사에 있는 동상의 정체가 뒤늦게 드러나 일본이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신토와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길거리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보이는 십자가 대신 신사와 사찰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신성시되는 영물이 있는데요. 일본 신사를 지키는 ‘고마이누’입니다. 신사에 방문하면 고마이누 조각상을 만날 수 있는데요. 사악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본당의 정면 앞에 세워집니다.

그런데 사실 상상 속의 동물인 줄만 알았던 이 고마이누가 실은 실존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개’란 뜻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땐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부정하게 바빴습니다.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영물이 한국으로부터 기원한 것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요. 하지만 일본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가 “고마이누는 고구려개”라고 폭로해버렸습니다.

일본 위키 사전에서는 고마이누를 ‘사자와 개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스카 시대에 일본에 건너왔는데 처음에는 사자 모양으로 두 마리를 세웠으나 헤이안 시대를 들어서면서 한쪽은 사자, 한쪽은 개 모양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에다 마사아키 명예 교수

그러면서 고마이누는 고대 인도에서 부처를 수호했던 사자에서 유래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만약 정말 인도에서 건너왔다면 인도계로 불려야 하는데 왜 고마이누라고 불리고 있냐는 것입니다.

이에 우에다 마사아키 교수는 단호하게 답을 내놓았습니다. “고마이누는 고구려개다. 그것은 ‘고마=고구려’를 이해한다면 간단명료한 답이다. 따라서 고구려개를 인도개라고 설명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과거 삼국시대부터 한민족과 함께했던 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라 유물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태의 조각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몰랐습니다. 2005년 경주 서라벌대학에 재직 중이던 최석규 교수는 경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열람하다가 한 가지 눈에 띄는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신라시대에 분포하던 개들을 본뜬 토우들을 보면 대부분이 꼬리가 짧거나 없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꼬리 부분이 파손되거나 훼손이 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짧은 형태이거나 생략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꼬리 없는 개가 살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요. 실제로 자료를 조사해 본 결과 한국의 역사 기록문에서 꼬리가 없는 개의 존재가 밝혀집니다.

경주개 동경이

조선 현종 10년에 출간된 동경잡기에 보면, 꼬리 없는 개에 대한 기록을 처음 확인할 수가 있었는데요. 이에 최석규 교수는 “이 개의 이름은 동경개입니다. 삼국사기 등 수십권의 문헌에 기록될 만큼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했던 존재입니다”라며 동경이의 존재를 증명해냈습니다.

실제로 삼국사기에는 “꼬리가 없는 개가 있다”라는 대목이 등장하고 조선 동경잡기에도 역시 “동경에 사는 꼬리 짧은 개를 동경구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경은 일본의 도쿄가 아니라 고려시대 삼경 중 하나였던 현재의 경주를 말하는데요.

즉, 신라에 동경이가 많이 분포했었던 사실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동경잡기 외에도 중보문헌비고, 오주연문장전산고, 삼국사기, 성호사설, 대동야승, 고금석림, 낙하생집, 신라회고, 해동지, 경주읍지 등 많은 분원에서도 동경개의 모습을 묘사하고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동경구는 영특하며 민첩성이 뛰어나고 용맹스러운 기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사람에게 한없이 온순하며, 특히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다”

그런데 왜 동경이는 한반도가 아닌 일본에서 영물이 되었던 것인지 궁금한데요. 일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지만 과거 한국이 일본에 건너가서 선진문명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해하던 일본인들은 그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지도자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을 만들었는데요.

이때 그 지도자가 생전에 길렀던 개가 동경이고, 이걸 조각하여 만든 것이 바로 고마이누였던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동경이는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멸종 위기까지 가게 되는데요. 그건 바로 일본의 많은 때문이었습니다. 때는 일제강점기로, 본격적으로 일본의 군경들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동경이었는데요.

동경이를 본 그들은 크게 노하며 동경이의 씨를 말리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의 개가 감히 일본의 신성한 동물인 고마이누를 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상은, 고마이누의 기원이 동경이었지만 말입니다.

일본의 왕가나 신사, 절을 지키는 영물로서 일본에서 신성시되는 고마이누의 모습이 조선의 토종개였다는 사실에 조선의 식민지배를 하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일제는 동경이를 중심으로 진돗개, 삽살개 등을 비롯한 한국 개들을 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의 개들은 1년에 수십만 마리씩 목숨을 잃었는데요. 거기에 일본은 문화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동경개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과 편견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꼬리가 없어서 재수 없는 동물이다. 얼굴도 못생기고 꼬리도 없어서 불길하다” 이렇게 일제는 선조들과 동경이를 이간질 시켰고, 동경개는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불길한 징조의 상징이 되어 우리 선조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동경이는 목숨을 잃고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동경개에게 한 줄기 빛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최석규 회장이 동경이의 존재를 밝혀낸 이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에 이어 한국의 4번째 토종견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540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동경이와 진돗개는 외모가 아주 닮았습니다. 실제로 동경이와 진돗개는 토종개 중 가장 유전적으로 가깝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교적 가까운 것이지 전혀 다른 견종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동경개 역시 진돗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충성심이 뛰어난 일화가 중보문헌비고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는데요.

“경주에 살던 한 선비가 동경개를 데리고 한양으로 가는 도중 문경새재에서 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그러자 동경개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죽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죽은 곳으로 안내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사람들은 동경개의 충성심과 영특함에 감복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경이는 머리가 명석하고 훈련 습득 능력이 뛰어나 인명구조견 등으로 활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동경이 연구보존협회 연구진들은 오로지 사명감 하나로 경주 전체에 흩어져 있던 동경이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 개들을 서라벌대학 사육장에서 키워, 동경이들은 점점 개체수를 불려나갈 수 있었고 그 결과 지금은 500마리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동경이는 천연기념물인 만큼 신중하게 선별적인 분양을 실시해 키우게 했고, 마음대로 입양을 보내거나 판매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외국 견종들이나 진돗개에 밀려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던 동경이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동경이 분양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현재 지금까지도 동경이의 보전, 번식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경주에 탑골마을과 양동마을은 동경이 마을로 지정되어 동경이 사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마을을 방문하면 실제로 동경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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