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을 상대로 50조원을 쏟아붓고도 모자라 30조원을 또 붓는 국가가 있습니다. 바로 폴란드인데요. 그런데 이번에는 무기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지만 가장 확실한 전력 생산을 담당하는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얼마 전 폴란드 언론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서울에서 폴란드 전력 공사, 민간발전사인 제팍과 폴란드 퐁투누프 지역 신규 원전건설을 위한 협력 의향서를 체결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사업은 폴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폴란드 에너지정책 2040의 원전 계획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를 철거하고 1.4GW급 원전을 최대 4개까지 건설하겠다는 별도의 사업입니다.
원전 1기당 건설비를 최대 7조원으로 추산한다면 전체 수주액은 최소 10조원 이상 최대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만약 이번 협력 의향서가 계약까지 이어진다면 2009년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약 13년 만에 원전 수출로 향후 한국형 원전이 본격적으로 유럽 원전시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사업은 특이하게도 폴란드가 공개입찰 형식이 아니라 한국을 콕 집어 협력 의향서를 체결한 만큼 사업권이 다른 국가로 넘어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 역시 본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100%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다만 이 사업에서 최대 걸림돌은 미국 원전기업인 웨스팅하우스입니다.
현재 한국의 한수원과 한국전력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서 소송 중에 있습니다.
폴란드의 원전 사업 수주를 앞둔 시점에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수출입 통제법에 따라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의 수출을 제한해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에 자사 기술이 포함됐다며 이를 다른 국가에 판매하려면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자신들이 2000년에 인수한 미국 컨버스천엔지니어링이 있습니다. 한수원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APR-1400은 그 회사의 원자료인 ‘시스템 80’ 디자인을 토대로 개발됐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업계에서는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의 원전 수출을 견제하려는 의도에 노이즈마케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에도 지식재산권을 문제 삼은 바 있는데요. 당시에는 웨스팅하우스에 기술 자문료 등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측의 승인받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다릅니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력 미래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원전 기술 독립에 대해 “기술적으로 100% 독립했다. 소송한 이유는 역으로 말하면 우리나라가 그만큼 경쟁력 있고 견제하지 않으면 안 될 상대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라며 “설계 전산 포드, 원자력 냉각제 펌프, 디지털 제어계 등을 전부 국산화해서 100% 기술 자립에 성공했고, 우리가 외국에게 전수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그간 한국에서는 원전을 폐쇄하거나 폐쇄해야 한다는 논쟁이 있었고, 실제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경제성 측면에서 보면 1kg의 우라늄이 핵분열로 만드는 에너지의 양은 석유 200만 리터 또는 석탄3,000톤과 동일한데요.
그래서 원자력을 불, 전기에 이은 ‘제3의 불’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속설처럼 원자력의 거대한 효율성과 경제성은 사고 후유증이 너무나 거대하고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만들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의 문제, 이를 이용해 핵무기로 전용하는 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아예 원전을 폐쇄하고 대체 에너지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력이 만드는 양과 동일한 에너지를 생산하려면 더 큰 환경 문제가 존재합니다.
한국만 보더라도 2021년 기준 전체 전력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34.3%에 이르고 있고, 약 27.4%를 원자력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석탄화력발전소는 전국 12개 부지에 총 60기가 운전 중이지만, 원전은 24기에 불과합니다. 원전을 폐쇄하고 현재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력발전소 약 40기가 추가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이로 인한 환경파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줄이는 것에 공통된 의견을 보였으나 이를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는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태양열 등의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화력발전으로 돌아서자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에서 ‘빌 게이츠’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액체 나트륨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인 소형 원자로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요.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보다 완벽하게 안전하며 진보적인 원자료를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2021년 출간한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통해 “지구온난화를 멈추고 기후변화가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야 한다. 원자력이 자동차나 화석연료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을 죽인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우리 정부 역시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할 12개 기술 분야 중 세부 중점기술로 차세대 원자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는데, 2028년까지 소형모듈원전을 개발하여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초고난이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원전시장에서 최고의 수준에 오르기까지 대한민국은 멀고도 긴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1957년 설립된 국제원자력기구의 창립회원국이었던 한국은 1958년부터 국내 원자력 연구 진흥을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이에 1958년 미국 ‘제너럴 아토믹’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를 들여왔습니다.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이 원자로는 1995년 가동이 중단될 때까지 총 36,535시간 운전했는데 이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와 자료가 축적되어 1990년에야 기술 자립에 성공했습니다.
아마도 원자력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 핵확산이라는 안보와 관련 우려까지 원전 소식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무엇이 정답이다라고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만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의 기술력과 해외 수출에 오른 노력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