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만들기 몰두한 일본 “한국 잡으러 왔다 눈물 쏟고 돌아간 천재들” 자칭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일본 천재라더니

천재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나라 일본.

일본은 세계의 어떤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자신들의 의지로 ‘천재’라는 이름을 붙여 이를 키워내는 프로젝트의 매우 몰두해 왔습니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사다 마오’인데요.

“우리가 아시아의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아시아인이 아니다”라며 탈아시아를 외치던 일본은 이를 과시하는 데 매우 적합한 종목으로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피겨 종목에서 천재 키우기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얼음 폭풍”이라 이름 붙이며, 여기에 무려 20조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쏟아부으며 일본의 피겨 천재를 키우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희망의 불씨를 붙여줄 인재를 발굴하게 되는데 그 인재가 바로 아사다 마오였습니다.

그녀는 우수한 외모에 여자 선수 중에는 유일하게 엄청난 점프 기술인 트리플 악셀까지 할 수 있는 일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그런 종류의 인재였습니다.

스타성과 천재성까지 겸비하고 있다고 판단한 일본의 언론들은 아사다 마오를 향해 엄청난 지원은 물론, 각종 광고까지 몰아주며 그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런데 일본에게 찬물을 끼얹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의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스케이트화 조차 제대로 신지 못하고 피겨 전용 링크가 없어 제대로 된 연습도 하지 못한 그녀가 보여주는 피겨 스케이팅의 모습은 모두가 인정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는데요.

100년 정도의 역사 밖에는 되지 않는 여자 피겨계에서 이런 김연아를 향해 100년을 넘어 1000년에 한번 나올 만한 천재라고 수식어를 붙여줄 정도였으니, 이를 지켜보는 일본의 질투심은 말도 못할 정도로 커지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김연아가 세계 주니어 대회에서 아사다 마오를 꺾고 우승하자, 일본은 이에 큰 충격을 먹고 본격적으로 김연아 깎아내리기에 돌입하는데요.

일본의 온갖 언론 등을 동원해 둘의 포지션을 기술의 아사다 마오, 표현력에 김연아라는 이미지로 만들어 이를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트리플 악셀을 10번에 1번 성공할까 말까 했던 아사다 마오에게 기술력 포장이 너무 과할 때로 과한 것이었는데요.

오히려 김연아의 점프는 여자는 물론 남자도 흉내내기 힘들정도였다고 정평이 나 있었기에, 기술과 표현력 모두 월등한 김연아의 이미지 중에서 어떻게 해서든 하나를 가져와 양강 체재를 구축하기 위한 일본 나름의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훼방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가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데요.

당시 스케이트화에 테이프를 칭칭 감으며 경기했던 김연아의 재정 문제를 알아챈 일본에서 IMG 라는 기업을 통해 김연아에게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기업의 실상은 일본의 우익 세력과 연결되어있는 아사다 마오의 소속사였는데요.

이들은 김연아에게 지원을 하기는 커녕 다른 기업의 접근까지 막으며 철저히 김연아의 멘탈을 흔들어 놓으려는 시도들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국민은행이 김연아 선수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촉하면서부터 한국의 소속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를 가볍게 따돌리며 매번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결국 피겨의 여왕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는데요.

애초에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 자체가 될 수 없었는데 일본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천재 프로젝트 의해 어찌보면 철저하게 이용당한 선수가 바로 아사다 마오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천재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뿐만이 아닌데요.

일찌감치 축구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자한 일본은 유소년 인프라 체계를 탄탄하게 구축하여 2000년대 초반 ‘히라야마’라고 하는 자칭 일본이 낳은 천재 스트라이커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본 일본의 한 언론은 “히라야마는 아마도 일본 축구 역사상 가장 괴물이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보아온 포워드들과 차원이 다르다”라며 그의 천재성을 극찬했는데요.

당시 우리나라의 박주영 선수와 비교되면서 국내에서도 이 둘을 라이벌로 놓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마 히라야마는 짧은 네덜란드 생활을 뒤로하고 FC도쿄에 입단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맙니다.

반면 박주영 선수는 AS 모나코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통해 결국 아스날까지 입단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일본과의 올림픽 대결에서도 천금같은 결승골을 넣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는데요.

이처럼 일본의 호들갑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급기야 바둑으로 분야를 옮겨 천재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일본이 낳은 바둑 신동이라는 2009년생 ‘나카무라 스미레’

그녀의 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프로 9단의 바둑 기사를 지냈으며 어머니 또한 아마 6단으로 온 집안이 바둑으로 단련된 집인 만큼 스미레 또한 일찌감치 바둑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일본의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하며 같은 또래 어린이 중 최상위권의 실력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런 스미레의 천재성에 이때다 싶었던 일본은 일본 기원 사상 최연소 프로 입단을 시켜주며 영혼까지 끌어모아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에 이릅니다.

스미레의 인기는 일본 내에서 가히 폭발적이었는데요.

그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초등학생 중 한 명이 되었으며, 일본 바둑 기원도 이러한 화제성을 활용해 스미레와 관련한 다양한 굿즈까지 출시함으로써 후광효과를 제대로 보기도 했습니다.

이후 같은 나이대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 스미레는 일본 바둑계의 권유로 한국으로 도장 깨기를 하러 왔습니다.

그렇게 2018년 한국에서 개최된 크라운해태배 어린이 바둑 명인 전에 호기롭게 출전하게 되었는데요.

16강에서 만난 스미레의 상대는 같은 나이 이주영군으로써 경기 결과는 일본의 기대하는 다르게 이주영 군의 불계승으로 스미레는 허무할 정도의 패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항상 최고의 대우를 받아오고 대적할만한 적수가 없었던 스미레, 이런 굴욕을 처음 겪어보는 강한 적의 모습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한국에서는 16강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렇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스미레는 천재가 아닌 바둑에 재능이 있는 평범한 아이로 돌아가 우리나라의 한종진 9단 문하에서 바둑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택하며 한국에서 바둑 유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란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그리고 불모지라고 불릴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깨고,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나 인물로 발돋움한 한국인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싶은데요.

우수한 인재가 가득한 한국. 더 많은 인물들이 세계적인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좀더 좋은 환경이 갖춰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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