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도 특별합니다!!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홍범시티’를 추진하려는 이유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의 오랜 인연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인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는 단호하게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우정을 강조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이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알마티’를 ‘홍범도’시로 바꾸겠다고 충격적인 선언을 한 것 인데요.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우정을 기리고 고려인들이 카자흐스탄 경제에 영향을 미친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이를 기리기 위한 방법으로 홍범도로 도시 이름을 바꾸겠다는 것인데요.

수도 누르술탄에도 홍범도 장군을 기념하는 동상을 세우겠다는 발표까지 한 것입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단호한 결정에 많은 이들을 환호했는데요. 특히 척박한 카자흐스탄 땅에 끌려온 고려인들의 후손들은 이번 결정을 통해 드디어 자신들의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며 결정에 쌍수를 들며 환호를 보냈습니다.

카자흐스탄 원주민들 역시 이번 결정을 반겼습니다. 이미 ‘아스타나’라는 이름을 ‘누르술탄’으로 바꾸면서 수도 이름을 바꾼 이력이 있기에 이번 명칭 변경도 카자흐스탄 주민들에게 있어 놀라운 일은 아니었는데요.

게다가 한국과의 협력이 강화된다는 차원에서 카자흐스탄 주민들은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민주화는 물론이고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의 결정이었기에 더욱이 이를 반대하는 이가 없었는데요.

카자흐스탄의 이번 결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한국이 겪어야 했던 슬픈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카자흐스탄으로 끌려와야 했습니다.

일제와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에 당시 소련을 지배하고 있던 스탈린은 한국인들이 어쩌면 일본인들을 위한 첩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소련에 거주하고 있던 이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보내 버렸습니다.

그 결과 많은 고려인들이 억울하게 삶의 터전을 버리고 황량한 땅에서 새롭게 삶을 개척해야 했는데요.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300km 떨어진 곳인 우슈토베 마을의 바슈토베 언덕은 수난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이곳에는 85년 전에 만들어진 토굴 터가 남아 있을 정도로 과거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2m 깉이의 사람 3명이 누우면 가득 찰 정도의 좁은 공간, 이 공간을 만들고 추위에 떨며 밭을 일구며 살아야 했는데요.

영하 40도를 기록하는 강추위가 예사롭게 찾아오는 이곳은 현지인들도 살기를 거부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불굴의 한국인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터전을 일구었는데요. 동포들은 메마른 땅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냈습니다.

그 결과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에서 손꼽히는 부를 축적하며 중요한 민족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 가운데 민족 영웅이었던 홍범도 장군 역시 고령의 나이에 카자흐스탄으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소련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했던 시기, 조용히 연해주에서 살던 홍범도 장군은 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추방의 대상자가 되었고, 카자흐스탄으로 쫓겨났습니다.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간 홍범도 장군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강인한 의지로 삶을 불태웠지만 고령이 된 그는 힘든 생활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려인들은 그를 걱정했습니다. 민족의 영웅이 가난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인데요. 고려인들은 그를 위해 당시 고려인들이 세운 ‘고려극장’ 수위로 임명했습니다. 그가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길 기원했던 것입니다.

빈 창고에 모아둔 무대 기구를 지키는 임무를 맡아 살던 그는 여유로운 말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1943년 머나먼 타향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유해는 카자흐스탄의 한 묘지에 묻히게 되었는데요.

그가 사망할 당시, 세계는 독일-소련 전쟁으로 긴박했던 시기였습니다. 소련 역시 전쟁 중이었기에 고려인들은 그의 묘소를 꾸밀 시간도 없었고 모실 장소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성금을 겨우 모아 그가 있을 곳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영웅인 그를 모시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곳이었는데요.

카자흐 정부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그의 묘지는 고려인들만 아는 민족 성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곳을 기억하는 이들이 서서히 없어질 무렵, 북한에서 우연치 않게 이곳에 홍범도 장군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제와 맞서 싸운 청산리 전투를 높게 평가하는 북한 입장에선 홍범도 장군은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를 타향 만리에 모실 수는 없다고 생각한 북한은 1993년 카자스탄 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유해 반환요청을 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이를 한국 정부 역시 눈치채고 카자흐스탄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에 모셔 오고자 했습니다. 졸지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남북 사이의 갈등 요소가 되었는데요. 민족의 영웅을 자국에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 첨예하자 카자흐스탄에서는 보다 못해 남북한의 주장을 기각하며, 카자흐스탄에 유해를 모시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홍범도 장군 유해를 뒤늦게 알게 된 한국 정부는 조바심이 났는데요. 그 이후 한국 정부는 카자흐스탄 정부에 끈질기게 요청합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에서 모시기 위한 긴 설득에 들어간 것인데요.

국가보훈처는 홍범도 장군 묘소에 돈을 쏟으며, 카자흐스탄의 마음을 돌리는 데 주력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홍범도 장군 유해를 돌려받기 위해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유해 환수를 요청했는데요.

특히 청산리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강조하며 방한한 토카예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이러한 정성에 감동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결정합니다.

작년 광복절을 맞이해 대한민국은 민족 영웅인 홍범도 장군 유해를 비로소 고국의 품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는 일련의 과정을 본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민족 영웅 대접에 깊은 존경심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홍범도 장군을 모시고자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속적인 요청을 들었던 토카예프 대통령은 그 열의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카자흐스탄 역시 나름의 조사를 했고 카자흐스탄을 위해 그가 공헌한 흔적을 발견, 카자흐스탄에서도 그를 위해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 크즐오르다 지역 이름을 변경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카자흐 경제에 차지하는 비율과 향후 한국과의 협력을 생각한 카자흐 정부 차원에서 이보다 더 큰 도시에 붙이는게 맞다고 판단한 것인데요. 그렇게 해서 결정된 곳이 바로 알마디였습니다.

알마디

현재 연평균 4%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바로 IT를 비롯한 첨단 산업입니다. 대부분의 산업이 원자재를 수출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어 부가가치 산업을 더 육성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는데요. 원자재 기반에서 IT 기반의 첨단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는 노하우가 필요하지만 그런 노하우를 가진 국가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가난한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카자흐스탄은 한국과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협력을 요청하는 등, 정부 차원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인연을 이어가며 한국의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최근 카자흐스탄 디지털발전혁신항공우주산업부가 삼성전자에 가전 공장 투자 및 정보기술 교육 확대를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데요. 카자흐스탄 디지털 혁신 장관인 무신 바그다트 바트르베코비치는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세계적인 위상을 칭찬하며, 한국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이 독자적인 산업 기반이 부족하기에 이 노하우를 지닌 삼성전자가 협력해 기술 전수를 해준다면 카자흐스탄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소망을 드러내면서 한국에게 매달렸습니다.

카자흐스탄의 노력은 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소형모듈원자(SMR)로 사업의 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카자흐스탄 신규 원전 발주처인 KNPP의 티무르 잔티킨 최고경영자는 시장에서 입증된 기술을 가진 한수원이 적격이라며 칭찬한 뒤 SMR 도입에 한국 기술을 채택했다고 선언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SMR 도입도 고려 대상이었지만, 이들보다 한국의 SMR 기술이 더 뛰어나다고 판단한 카자흐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미쳤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한국은 SMR 분야에서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순조롭게 원자력 사업에 투자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려인 직원 채용 계획도 발표하면서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진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토카예프 대통령의 ‘홍범도 시티’ 이름 변경 발언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도 카자흐스탄과 한국의 우애가 지속되기를 기원해 보겠습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