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의 약속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온갖 비난에도 약속 지키기 위해 스님이 된 일본인

제주도에 있는 절 선우정사. 이곳에는 조금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인 스님이 봉해져 있다는 것인데요.

일본 스님이 어쩌다가 일본에 절이 아닌 한국, 그것도 제주도에 봉해졌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1945년 오키나와, 미국의 포격과 총성에 맞서 일본군의 저항 역시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에서는 내부 단속과 결속을 다지는 프로파간다로 군인과 민간인 모두에게 끝까지 항전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후지키 쇼겐은 740명의 학도병을 지휘하던 일본군 학도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740명이 조선인 징병군으로 대부분이 10대 후반의 소년들이었으며, 소년들의 손에 들려진 것 총이 아니라 야전삽과 물통이었는데요.

이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방공호를 파고 또 파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밤마다 귀신 곡소리 같은 소리가 쇼겐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는데요.

이 소리는 다름이 아니라 징병된 조선 소년들이 밤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르던 노래였다고 합니다.

“그날 밤도 역시나 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한숨 섞인 구슬픈 한탄 같으면서도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는듯한 먹먹한 읊조림 같기도 했습니다.

그 곡조의 이름은 아리랑이라 하더군요”

쇼겐과 조선 소년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과 발짓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전쟁을 버텨나갔습니다.

일본에게는 너무 불리한 정황으로 먹을 음식도 제대로 보급이 안 되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쇼겐은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음식을 구하려다 붙잡혀 포로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미군은 오키나와에서 일본군 소탕 작전을 대대적으로 펼쳤습니다.

쇼겐은 어수선한 상황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방공호에서 그를 맞이한 것 조선의 향해 머리를 숙인 채, 등에는 큰 구멍이 난 채로 죽어있던 조선 소년들의 시신이었습니다.

총상을 당하고 그대로 방치된 처참한 시신의 모습에 쇼겐은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게 됩니다.

“미안하다.. 내가 반드시 너의 740명의 영혼을 조선으로 데리고 돌아가겠다.”

쇼겐은 조선 소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이내 곧 미군에게 저지당해버립니다.

쇼겐은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게 출입을 요청했는데요.

하지만 이곳을 들어오려면 최소한 스님 같은 종교인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쇼겐은 곧바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현장에서 어렵사리 시신을 수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당시 숨진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합사해버리는 바람에 조선 소년들의 유골을 한국으로 보내는 약속을 결국에는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쇼겐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유골을 보낼 수 없다면 혼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위령탑을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배했다지만, 식민지였던 국가의 포로를 위해 위령탑을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위령탑을 세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역도산 씨와 12년 동안 모금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역도산 씨가 저를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청와대였습니다.”

당시 역도산의 위상과 이름은 한국에도 유명했기 때문에 후지키 쇼겐은 박정희 대통령과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은 쇼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1000만엔을 주며

“지금 우리나라는 힘이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적은 돈이나마 위령비를 세우는 데 보내주시오. 대한 청년들의 넋이라도 기릴 수 있길 바랍니다.”

거기다 육영수 여사가 따로 별실로 불러 300만엔을 싼 보자기를 건네주면서 한국에 위령탑을 건립해 유골을 모시고 올 때까지 부디 위령제라도 잘 지내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1975년 오키나와에 1만 조선인의 영혼의 기리는 위령탑이 제막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향해 머리를 숙인 채 죽었던 동료의 모습을 잊지 못하는 후지키 쇼겐은 그것만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는 위령탑과 똑같은 탑을 하나 더 세워놓고 거기에 우리 학도병들과 조선인들의 영혼을 옮겨 담아 대한민국으로 데려올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3년 11월 3일 한국 제주도에서 결정된 Let’s Peace 한일 공동기구 결성식에서 한국인 위령탑 제주이전과 제주 국제 평화공원 조성사업을 결의하고 발의합니다.

그러나 오키나와 재일 한국인 민단에서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제주 이전 반대 성명을 내면서 후지키 쇼겐씨의 증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얘기를 퍼트리자 쇼겐씨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 되었고, 고령의 나이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평생을 조선인의 혼이라도 달래기 위해 스님까지 되어서 노력해온 그는 자신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유언장을 남기게 됩니다.

“제주 결성식에서 약속한 대로 오키나와 한국인 위량탑과 한 맺힌 영혼들을 제주로 모시고 제주국제평화공원이 건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부디 제주와 오키나와를 있는 바닷길과 하늘길이 원한과 미움을 걷어 내고 한일 양국간 화해의 다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어렵고 힘들겠지만 여러분들의 노력으로 결실을 이루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노력이 평화와 공존이라는 한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져 다시는 한일 양국 간 불신과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저승에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제가 숨을 거두고 이승을 떠나게 되면 2013년 11월 3일, 제주에서 말한 대로 제 유골은 한국 제주도 애월읍 봉성리 제주국제평화공원 조성지에 오키나와에서 돌아오는 전우들의 영혼들과 함께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위원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십시오.

후지키 쇼켄의 순수한 마지막 소망이 왜곡되지 않고, 진심으로 한일 양 국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의 언론과 정치는 한일 양국 간의 감정과 치부를 건드리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따지기도 하고, 보통 국민들은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는 아직도 많은 감정이 뒤섞여 존재하는데요.

그런데 한일 양국 사이에서 서로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며 활동해온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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