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파란 눈의 한국인…미국의 한 가문이 5대째 한국을 위해 무려 130년 동안 한 엄청난 일들

한 외국인이 “우리의 광복, 나의 광복”이란 눈길 끄는 제목으로 주요 일간지에 사설을 기고했습니다.

“서양인의 외모를 가진 내가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 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이 외국인의 정체는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 변호사입니다.

tvN 예능프로그램 ‘유 키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데이비드 린튼은 자신은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이며, 덕망 높은 선조들 때문에 어깨가 무더운 후손이라고 소개했는데요.

우스갯소리인 줄만 알았더니, 130년째 한국과 이어진 린튼 가의 이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대단합니다.

고조부였던 미국인 선교사 유진 벨이 1895년 광주와 목포 지역에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면서 한국과 린튼 가의 인연이 시작되었는데요.

유진 벨의 사위였던 윌리엄 린튼은 조지아 공대를 수석 졸업한 후, 1912년 21세의 나이로 한국에 건너와 무려 50여년간 선교와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특히 일제강점기 때 항일 운동에 동참한 독립운동가로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윌리엄 린튼은 군산 영명 학교 교장 시절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지도 하기도 했는데요. 영명 학교는 3.1운동 후 한강 이남에서 처음 벌어진 3.5 군산 만세운동의 진원지였습니다.

3.1운동을 목격한 그는 그해 8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 대회에 일본의 참상과 우리의 독립 의지를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애틀랜타 신문에도 비폭력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실상을 폭로하고 한국인의 독립 염원을 알리는 글을 기고했으며, 일본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추방되어 광복 후에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윌리엄 린튼이 일본의 신사를 광복한 후 화장실로 만들어버린 일화는 유명한데요. 그는 전주의 신흥학교와 기전 학교, 한남대를 설립해 민족교육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당신이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났지만 윌리엄 린튼은 전주에 남아 성경학교를 운영할 정도로 한국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요.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보의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 휴 린튼은 6.25 전쟁에 참전한 용사입니다. 순천에 결핵 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워 결핵 퇴치를 위해 평생 헌신했는데요. 안타깝게도 그는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당시 한국에 앰뷸런스가 없어서 아버지가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생각한 그의 아들 존 린튼은 한국형 앰뷸런스를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구한 장본인입니다. 존 린튼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존 린튼 (인요한) 소장

여기에 1978년 창업한 생명과학 연구 시약과 장비를 공급하는 매출 5000억 원의 글로벌 기업인 ‘프로메가’의 빌 린튼 회장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세운 한남대를 꾸준히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윌리엄 린튼 장학연구기금’을 통해 바이오 교육 및 인터십, 관련 연구를 위해 12만 5000달러를 지원한 이력이 있는데요. 그는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올 때까지 꾸준히 인력을 키워 내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린튼 가의 5대손 데이비드 린튼은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특별귀화해 현재 한국의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한국기업의 해외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서울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를 비롯해 한국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방송에서 “지금이 월급이 제일 적다. 사랑으로 선택한 직업”이라고 말해 진행자들은 웃게 했는데요. 10년 전에도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이력도 있는 그는 조상님들 보다 자신의 공로가 너무 적어 극구 방송 출연을 사양했다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흰 피부를 한 한국인 아저씨”라고 자신을 표현한 데이비드 린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한국인으로 귀화까지 한 걸 보면 그의 한국 사랑도 대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1대 유진 벨 (한국명 배유지), 2대 윌리엄 린튼(인돈), 3대 휴 린턴(인휴), 4대 존 린튼(인요한), 5대 데이비드 린튼(인대위) 이렇게 5대손에 이르기까지 한국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로 한국 사랑이 열렬한 린튼 가인데요.

후손들까지 살펴보니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한국과 연관된 이력을 품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인데요. 100년 넘게 이어져 온 각별한 한국 사랑에 마음 한구석이 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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