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20여년간 거제도에는 어마어마한 외국인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기준 외국인 인구수는 총 5729명으로 거제 전체 인구수의 2%가 외국인이 셈인데요.
대부분은 선박설비와 제조업에 종사하지만, 눈에 띄는 노르웨이,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 국적의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족들까지 전부 이주해 일부 지역에 ‘노르웨이촌’, ‘덴마크 마을’ 등 을 형성하고 있기도 한데요.

지금은 감소하기는 했으나 한때 거제시에 거주하는 노르웨이 및 덴마크인들의 가족까지 합하면 9,000명이 넘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프랑스 역시 2021년 기준 법무부에 등록된 전체 프랑스인 3,484명 중 약 10%에 해당하는 321명이 거제에 거주할 정도로 거제도는 상당히 많은 북유럽과 프랑스인을 흡수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거제도에는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조선소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거제도에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세계 최고의 조선소들이 밀집해 있고, 그 협력 업체들이 거의 대부분 위치하고 있습니다.
거제도에 유독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북유럽 인구들이 많은 이유는 두 개의 조선소에서 대대적으로 북유럽 인재들을 채용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대한민국 조선업은 8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했습니다.

2020년 대비 112%, 2019년 대비 82% 증가한 1,744만 CGT를 기록했는데 이는 조선 3사가 계획한 수주 목표율을 훨씬 상회하는 145% 수준입니다.
전 세계 총 발주량 중 37.1%를 한국이 수주하며, 각 기업은 평균 3~4년 치 일감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전체 수주량 중 72%가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LNG선 등의 고부가가치 선박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조선업의 메카인 거제도에 유독 북유럽의 인재들이 많이 이주한 것은 우리나라 조선소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북유럽의 뛰어난 인재들을 고용했기 때문입니다.
불과 1990년대까지 전 세계 조선업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곳은 영국과 북유럽입니다.
물론 세계 1위는 일본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북유럽은 전통적인 조선 강국으로 신뢰감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스웨덴의 ‘말뫼’는 스웨덴의 거제도라 불릴 정도로 조선업에 최적화된 지리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어 대형 조선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소 건립에 따라 이주인구가 늘어나고 지속적으로 조선업이 성장하면서 1974년에는 코쿰스 조선소가 세계 최대의 ‘겐트리 크레인’을 설치 하기도 했는데요.
이 크레인 덕분에 말뫼는 스웨덴은 물론, 북유럽의 조선산업의 번영을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대한민국이 전세계 조선업 1위로 올라서면서 북유럽의 조선업은 침체기를 겪다 장기화된 침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쇄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그렇게 스웨덴을 포함해 북유럽에는 장기간 조선업에 근속하면서 노하우와 기술로 똘똘 뭉친 엘리트 엔지니어들만 남았는데, 이 엘리트들이 갈 곳이라고는 새로운 유토피아 한국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머리에 그들이 가진 노하우는 감히 단기간에 축적할 수 없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그들을 거제로 불러들였고 일자리를 찾던 그들이 가족까지 이끌고 거제로 이주하게 된 것입니다.

한때 북유럽 최고 엘리트들이 수도 서울도 아닌 구석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이주 한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는데요.
한때 북유럽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을 기술자들이 거제도로 이주한 것은 조선업의 흥망성쇠와 관련됩니다.

1990년대 말 일본과 유럽 등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선 대한민국 조선업은 고급 엔지니어들의 수요가 풍족했고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던 유럽 조선소들을 제치고 엘리트들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조선소가 소재한 울산, 거제 등에는 갑작스럽게 북유럽인들이 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고급 인재들이 몰리는 이유는 경쟁국 .중국과 일본조선업의 몰락이 불러온 결과인데요.
그리고 그 몰락은 자신들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뼈아픈 수 밖에 없습니다.

한 때 부동의 세계 1위 일본조선업이 진짜 끝났다는 평가를 받은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3년, 싱가포르에서 사우디로 향하던 일본국적의 선박 ‘MOL 컴포트호’는 인도양을 지나 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운항을 멈췄습니다. 선원과 선장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굉음에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불과 몇 시간 만에 8000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이 절반으로 쪼개진 것입니다.

다행히 인근을 지나던 독일 국적의 컨테이너선이 구조선으로 출동해 선원과 선장을 구출해냈지만, 1000억 원이 넘는 이 선박과 그 선박에 적재된 컨테이너들을 다 구조하진 못했는데요.
일본의 대표적인 조선소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설계하고 건조한 이 컨테이너선은 적재된 선박 4,293개가 침몰한 역사상 최악의 컨테이너선 침몰로 기록됐습니다.
이 사고는 전 세계 발주사와 화주들에게는 충격이었는데요. 이 사건 이후로 일본조선업에 대한 불신의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중국은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최대한 많은 선박 건조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기술력이 부족한 중국의 입장에서 발주사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은 저렴하게 입찰하는 것, 즉 저가 수주전략을 쓰더라도 일단은 건조 경험을 쌓아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를 점유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중국 정부의 지원에 더불어 꽤 많은 선박을 수주한 중국 조선소들은 한국의 강한 경쟁국이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11년까지 연간 수주량 기준 세계 1위를 차지했던 한국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5년 동안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는 치욕을 맛봤습니다.
저가 수주에 도저히 맞설 수가 없었던 것인데요.
하지만 2018년부터 다시 한국이 1위로 올라서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저가 수주에 맞는 저렴한 기술력이 LNG선 분야에서 들통났기 때문입니다.
국제해사기구 IMO의 규제가 2020년부터 시작되면서 LNG선의 미래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는데요.

이런 가운데 한국의 LNG선 기술력은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완전한 독점체제를 갖추었습니다.
프랑스 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은 대형 LNG 운반선의 전 세계 발주량 89.3%를 싹쓸이했습니다.
여기에 그 동안 한국 조선사에 절대로 일감을 주지 않았던 일본 선주들까지 앞장서 한국에 발주하는 기현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한때 거제는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강아지들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할 정도로 부유했고 IMF가 유일하게 피해 갔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경제적인 호황을 맞이했었는데요. 하지만 중국에 1위를 빼앗긴 기간 동안 거제도, 울산은 훌륭한 엔지니어를 보유했음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 2020년 연속 세계 1위로 도약했고, 2021년에는 역사상 최대 수주기록을 써내며, 한때 중국에 빼앗겼던 자존심까지 완벽히 되찾아 한국 조선업의 위상을 다시금 실감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