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원 이름을 새 건물에 세긴 매출 1조원 세계 1위 미국 기업!! 도대체 그 한국인이 뭐 했길래?

미국의 한 반도체 기업이 새 건물을 짓고 오프닝 행사를 가졌다는 소식이 뜬금없이 굉장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황당하게도 새 건물의 이름 때문이었는데요.

미국 한복판에 미국 반도체 기업이 지은 미국 건물에 대문짝만하게 “TM KIM” 이라는 한국인의 이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폼팩터

트럼프 타워 하면 딱 떠오르는 게 건물주가 트럼프구나 하는 것인데요. 트럼프 타워도 트럼프 기업의 본사가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을 떡 하니 덜어두고 있는 것인데요.

보통 사람의 이름이 붙은 건물들을 보면 대부분이 건물주의 이름이거나 건물주 자녀의 이름입니다.

‘TM KIM’ 이 건물의 정체는 미국 반도체 기업인 폼팩터가 8번째로 지은 건물로, 그런데 폼팩터의 창업주나 현직 회장이 한국인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 폼팩터가 한국인의 이름을 건물에 그냥 붙인 것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가 누구길래 미국 반도체 기업이 건물 이름으로 새겨 버린 것인지 궁금한데요.

1993년 미국 뉴욕 엘름스포드의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된 기업 ‘콤팩터’는 20년이 지난 지금 MEMS 프로브카드 분석용 프로브 시스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건물도 여러게 증축하게 되었는데요.

벌써 8번째 건물인 ‘태마 김 매뉴팩터링센터’를 만들었습니다. 8,350m² 규모의 건물로 반도체 클린룸이 설치되어 있어 프로브 카드 조립검사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데요.

건물에 새겨진 ‘태마 김’은 창업주도 현직 회장도 아닌 그냥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한국인 직원이었습니다.

태마 김은 건국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시그네틱 코리아에서 일하다가 1995년 미국 폼팩트로 이직하면서 폼팩트사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고 태마김

당시 폼팩트는 이름만 기업이지 겨우 16명이 근무하던 작은 연구실에 불과했는데요. 태마 김이 입사하면서 17명이 되었습니다. 그랬던 회사가 지금은 직원이 2200명이 되고, 연 매출 1조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것인데요.

그런데 폼팩트사는 자신들이 지금처럼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게 해준 핵심적인 인물이 한국인 직원 ‘태마 김’이었다고 합니다. 태마 김이 개발한 반도체 조립 공정 핵심 장비 ‘와이어 본더’로 2003년 폼팩트사가 나스닥에 기업 공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개발한 첨단 기술 특허 덕분에 회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태마 팀은 단순히 제품 개발에만 능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업 능력마저 뛰어났는데요.

삼성과 하이닉스, 인텔 등 초 거대 기업들을 주 고객으로 유치시키는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태마 김이 없었다면 폼팩트사는 지금처럼 눈부신 성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작은 연구실 기업 17번째 멤버로 태마 김이 합류해준 덕분에 폼팩트사는 2200명은 이끄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태마 김의 인품과 공적을 기려 이 건물을 ‘태마 김 매뉴팩터링센터’로 명명하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며 폼팩트사는 그들이 걸어온 치열한 경쟁에서 기업을 승자로 올려세우는데 공헌한 핵심 인물이 태마 김이라는걸 모두가 인정했습니다.

건물 겉면 뿐만 아니라 입구 로비에도 그가 일하던 모습과 업적이 적힌 표지판이 크게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내 태마 김인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건물이 완성되기 전 타계하시며,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건물을 직접 눈에 담지는 못하셨습니다.

마이크 슬래셔 회장은 태마 김의 아들 김임엽씨와 부인 김희원 씨를 초청해 테이프 커팅식을 하며 태마 김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마이크 슬래셔 회장은 태마 김의 아들 김임엽씨와 부인 김희원 씨

태마 김 씨가 폼팩트사에서 이룬 업적도 정말 대단하지만, 회사가 그를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이렇게 한다는 것도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동안 미국 도로가 건물 등에 종종 한국인의 이름이 명명될 때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그들은 국내외적으로 잊을 수 없는 활약을 보여준 존경받는 한국인들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6.25에서 활약한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님의 이름을 딴 ‘김영옥 대령 고속도로’ 이건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인의 이름을 딴 고속도로였는데요.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독립운동을 이끈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이름을 딴 ‘도산 안창호 인터체인지’ ‘도산 안창호 우체국’ 이렇게 유명한 분들의 이름이 종종 붙여졌습니다.

그런데 올해 중순 미국 알래스카에 있는 다리에는 한 한인 할머니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녀는 평범한 이민 1세대 중 한 명일 뿐인데요.

2008년 완공되었지만 무려 14년 동안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고 있던 알래스카의 한 다리는 의미 있게 그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미루고 미뤄왔던 것인데요. 그런데 최근 드디어 이 다리에 의미 있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숙백 브릿지’ 백인숙 그녀는 부산 출신의 1세대 이민자였습니다. 198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1년 후 앵커리지로 이사와 정착한 후 그녀는 모두가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을 현실로 이루어냈습니다.

한국 전쟁을 겪은 이후 지독한 가난 속에 살아야 했던 백인숙 할머니에게 미국 이민은 그녀가 가난해서 벗어나게 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주유소를 몇 개나 운영하며 여유로운 삶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백인숙 할머니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받게 된 여유로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누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매년 추수 감사절이 되면, 푸드트럭을 이용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선행은 10년이 넘도록 이어졌는데요. 백인숙 할머니의 나눔 정신은 현지 언론에서도 여러 번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백인숙 할머니가 베푼 친절은 누군가에게 삶의 희망이 되었는데요.

그녀가 보여준 따뜻한 정에 감동한 앵커리지시가 14년 동안 비워두었던 다리의 이름으로 백인숙 할머니의 이름을 새겨 넣기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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