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짜리 물건을 200만원 주고 사는 지경”사우디보다도 석유가 많은 나라가 지금은 쫄딱 망한 이유

전 세계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매장된 나라 하면 대부분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를 떠올리는데요. 그런데 사실은 원유가 가장 많이 매장된 나라는 바로 중남미의 베네수엘라입니다.

글로벌파이어파워에 따르면 2022년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약 3천억 배럴로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상당히 큰 차이가 나는데요. 대체로 산유국들은 부유한 나라가 많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황이 의아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지난 1922년 베네수엘라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가 발견됐습니다. 중동 국가들보다도 먼저 석유를 발견한 건데요. 이후 베네수엘라는 석유 시장에 뛰어들어 자국 경제력을 빠르게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다른 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 여파에서 회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1950년대 베네수엘라는 1인당 GDP 세계 4위를 기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또 한 번의 잭팟인 오일쇼크가 터집니다. 오일쇼크는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을 겨냥해서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의 산유국들이 석유 가격을 대폭 인상했던 사건을 말하는데요.

이 사건으로 최대 원유 매장국가인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됩니다. 오일 쇼크로 인해 1973년 배럴당 2.9달러였던 유가는 이듬해 배럴당 11달러로 3배 이상 치솟았고 당시 베네수엘라는 현재 중동 국가들과 견줄만한 막강한 부를 자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오일머니로 넘쳐나는 부를 얻게 되다 보니, 석유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게 되고 그 결과 사실상 산업이라고는 석유 하나만 존재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게다가 석유산업을 대부분 국가가 소유하고 있다 보니 기득권 세력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막대 수입을 국가발전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 바빴던 것인데요.

그 결과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양극화가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 1980년대 중반 전 세계적인 원유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는데요.

사실상 유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베네수엘라 정부가 이에 대해서 대비할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았던 것입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당연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급기야 정부가 복지마저 대폭 축소하자 안 그래도 곪아있던 부의 양극화 문제가 극심해지면서 민심이 돌아서게 되는데요.

그리고 이때 베네수엘라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물인 우고 차베스가 등장합니다.

1980년대 중반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폭락하기 시작하자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군인 출신 우고 차베스가 있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이를 계기로 차베스는 민심을 얻게 됩니다. 그 결과 1999년 차베스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됐고 극단적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차베스의 초반 정책은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전에 기득권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것과 반대로 빈곤층에게 무상의료와 무상주택을 제공하며 복지를 크게 늘리고 편의시설과 공공시설 등의 사회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게다가 시장 가격을 정부가 통제해서 판매자가 책정한 금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정책까지 만들었는데요. 이와 더불어 때마침 유가가 다시 오르면서 경제가 회복됐고 차베스는 민심을 확실히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개헌을 통해 연임 제한을 없애며,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만들었고 실제 4번의 연임에 성공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살기 좋은 복지국가로 보이겠지만 사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잠복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국민들에게 거둔 세금을 바탕으로 복지정책을 펴는데 베네수엘라는 세금 대신 석유산업으로 벌어들인 자금만으로 복지를 하는 경제 시스템이었기 때문인데요.

게다가 무리하게 시장을 통제하다 보니 기업들은 물건을 생산해 판매하더라도 이득을 보기 어려워 공장이나 농업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실직자와 빈곤층이 늘어났고 석유산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복지에 더욱 쏟아 부어야 하는 탓에 국가발전을 위한 기술 투자는 등한시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베네수엘라와 같이 산업이 매우 제한적인 국가는 산업 다변화를 이뤄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업을 확대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맥락인데요.

게다가 베네수엘라의 원유는 품질이 낮아 정제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질유가입니다. 따라서 고도의 정제 기술이 필요한데요. 문제는 베네수엘라가 정제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때문에 외국기업의 정유기술에 의존해서 원유를 수출해 왔는데요. 2000년대 후반 차베스는 국가수익을 늘리겠다는 이유로 외국계 정유회사를 강제로 퇴출하거나 국유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됩니다.

노후화된 정유시설을 재설비할 기술력이 없어서 원유 수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인데요. 결국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 국가임에도 수출하지 못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2013년 우고 차베스는 암으로 사망했고, 그 뒤를 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이어가게 됩니다. 스스로 차베스 신봉자라고 공헌할 정도였던 마두로가 그의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려 했고, 게다가 이때 유가가 다시 하락하기 시작했는데요.

베네수엘라 원유 최대 수입국이던 미국과도 마찰을 빚게 됩니다.

정유회사 국유화 과정에서 미국 회사를 퇴출하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고, 2010년대 셰일 혁명이 시작되자 반미정권인 마두로 정부는 미국 셰일 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원유 수출을 대폭 늘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경제제재로 맞대응하는데요. 안 그래도 위태롭던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또다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마두로는 민심을 얻기 위해 복지정책을 이어가야 했는데요. 하지만 국가는 자금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선택한 것은 돈을 찍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시장에는 많은 돈이 풀리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화폐의 가치는 폭락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기 시작합니다.

휴지 조각된 지폐 가치

인플레이션은 2015년 처음 121.7%로 세 자릿수에 진입하더니 2016년에는 약 254.9%, 2017년에는 약 438.1%로 폭증했고 정점에 이른 2018년에는 무려 65.374%가 됐습니다.

국민들은 빈곤에 시달려야 했고,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국민 평균 체중이 11kg 이상 줄어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2018년에는 베네수엘라가 의약품 구매대금을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으로 대신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회 인프라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서 치안에도 크게 문제가 생겼고 ‘전 세계 살인율 1위’라는 오명을 떠안기도 했습니다.

극단적인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최근 회복세가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수치이긴 하지만 2022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200%대로 떨어졌고 미국의 베네수엘라에 대한 원유 수출 제재 일부도 해제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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