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이 3000억!! 잘 물려받아서 재산을 더 키웠어요…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욕해도 좋을 그들 ‘친일파’ 그 피 어디 가나? 그 후손들의 현재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최소한의 예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에 반대로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에게 붙어 약탈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면서 추종한 무리 즉 “친일파들은 흔히 잘 먹고 잘산다”라는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당시 친일 행위를 하면서 땅도 받고, 돈도 받고, 권력도 쥐기도 했다고 하니 그 당시 쌓았던 부가 지금까지 내려왔을 것이다라는 것인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친일파 집단은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등이 있습니다.

먼저 ‘을사오적’의 경우 1905년 일본에게 외교권을 팔아버리는 ‘을사늑약’을 주도한 사람들로 을사늑약 체결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했던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이 있었습니다.

그다음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켜 국방력을 무력화 시켰던 정책인 ‘정미7조약’을 추진했던 ‘정미칠적’ 이 정책으로 대한제국은 언론을 장악당하고, 같은 민족을 체포하게 되며 군대가 해산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 등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일병합조약’을 맺으면서 나라를 팔아버린 ‘경술국적’ 8명의 친일파 명단은 이완용, 윤도경, 민병석, 고영희, 박재순, 조중응, 이병무, 조민희입니다.

3관왕을 차지하며 친일파, 매국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인 이완용은 실제 일제 강점기 시절 축적한 부는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한일 강제 병합 이후 파악된 이완용의 재산은 약 100만원. 지금 돈으로 환산해 본다면 약 200억원이 넘는 금액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 200억원을 가지고 또 부동산에 투기해 당시 이완용 확보한 땅은 2,234만㎡로 여의도 면적의 8배에 달하는 부동산은 소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해보면 약 3000억 원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완용이 죽기 전 소유하고 있던 땅은 현금화했으며, 결국 이 돈은 이완용의 아들인 이항구에게 상속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항구는 이완용의 장남인 이승구가 요절해 독자가 되었던 인물로 젊었을 때부터 술과 유흥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또 이항구는 아버지 이완용을 등에 업고 일제로부터 작위를 하사받았고, 물려받은 돈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이용해 사채업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익을 거두는 사채업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축적하고 떵떵거리면서 잘 먹고 잘살았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전인 1945년 3월 6일 죽어버리면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항구에게는 이병길, 이병주라는 아들들이 있었는데 이완용의 손자라는 이들도 모두 작위를 하사 받게 되는데요.

먼저 이병길은 1937년 조선의 귀족들로 구성된 동요 회의 이사장으로 중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국방헌금을 모아 일제에 갖다 바치는 등의 친일 행위를 이어가다 광복 이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체포되었고, 한국전쟁 중 실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다음 이병주의 경우에는 일제에게 남작 작위를 받은 이후 떵떵거리면서 살다가 이병길과 마찬가지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송치되면서 죗값을 받나 싶었지만, 일본으로 도망가 일본 국적을 취득해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너무 화가 끓어오르지만, 그 뒤를 잇는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은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또 친일파 후손 중 최초로 토지 반환 소송을 제기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단연히 친일파의 후손이니 패배할 줄 알았지만, 1997년 7월 이 소송에서 승소해 광복 이후 국가에게 반환되었던 당시 시가로 30억원에 달하는 북아현동 일대의 토지를 국가로부터 돌려받게 됩니다.

법정에서는 승리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과 질타를 안 받을 수는 없었는데요. 그런데 이윤형은 국가에서 돌려받은 토지를 처분하고 캐나다로 도망가버렸습니다.

이렇게 싹 다 도망가거나 죽거나 했으니 이제는 이완용의 후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행방을 찾기 힘들어졌는데요. 실제로 여러 방송사에서 이완용의 남은 재산과 후손들을 추적을 해봤으나, 계속 실패를 거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친일파보다 더한 친일파 후손이 국내에 남아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국방력을 무력화시켰던 ‘정미칠적’ 중 한 사람인 송병준은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며 이후 자발적으로 창시 계명을 하면서 일본에 헌신할 테니 돈이나 땅을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정치인들과 로비하면서 인맥을 쌓고, 이후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의 군사 통역관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에 붙어 다시 조선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일본에 저항하는 의병들을 진압해 일본군에 넘기는 등의 만행도 저렇다고 하는데요. 송병준이 죽은 이후 일본의 국가주의 우익 조직인 흑룡회에서 한일 강제 합병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인물로 선정해 추도식을 진행할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일본에 충실했던 친일파였는지 감이 오는데요.

결국 송병준의 이런 친일 행적은 일제강점기 시절 어마어마한 부를 쌓게 했다고 하는데요. 과거 부평 미국부대의 토지와 경기도권을 포함해 총1,619,000평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25년 송병준이 사망하게 되면서 귀족 작위와 재산이 송병준의 아들 송정헌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송정헌은 송병준에게 물려받은 토지를 관리하면서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지만,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후 자신이 살고 있었던 99칸짜리 대저택과 전답을 급하게 처분하고서울로 도피했지만 1948년 반민특위에 체포되면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송종헌의 아들, 송병준의 손자인 송재구는 일본에서 메이지 대학을 나온 뒤 홋카이도에서 ‘조선 목장’을 경영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으며 일본에서 잘 먹고 잘살다 1976년 사망했습니다.

한편 국내에선 여전히 송병준의 후손들이 사회를 더럽히고 있었는데요. 대표적으로는 송병준의 손자인 송돈호는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송병준이 가지고 있었던 토지를 상속받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만 전문적인 토지 브로커들과 결탁하면서 국가로 귀속된 매국노들의 땅 찾기 소송을 주도했고, 특히 2005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위헌이라고 하면서 헌법 원을 낸 적도 있었는데 하지만 그때 송돈호는 이미 국가에 귀속된 할아버지인 송병준의 땅문서를 가지고 토지사기 혐의로 구속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소송에서 패소하자 일본으로 도피한 후 “손병준이 친일파는 무슨, 우리 할아버지는 애국자다”라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친일파 후손들은 대부분 토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최고의 땅 부자라고 불리는 친일파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약 2,300만 평의 토지를 보유했던 민영휘.

민영휘는 조선 최고의 땅 부자라고 불리는 만큼 친일파 중 재산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과 한반도는 원래 형제의 나라였다고 주장하며, 일본은 잘난 형이고 조선은 못난 동생 나라이기 때문에 잘난 형 일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이런 이념을 가진 ‘신궁봉경회’라는 일본의 종교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영휘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고 조선의 식민화를 위해 앞장서서 이 종교를 퍼뜨렸는데요. 결국 민영휘가 일제강점기 시절 쌓아 올린 재산은 현재 가치로 환산해보면 약 1조 2천억 원.

이 엄청난 금액에 따라 실제로 재산 상속도 어마어마했는데요. 일단 민영휘의 부를 바탕으로 그의 아들 민대식은 재빨리 물려받은 토지를 매각한 뒤 한일은행 총재로 임명, 또 다른 아들 민규식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손자 민명도는 한국은행 총재 자리를 이어받고, 증손자 민인기는 휘문고등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민영휘는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의 명단과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195인 명단 등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로인해 2007년 5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 그리고 제3자에게 처분한 민영휘의 재산까지 모두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재산을 몽땅 빼앗기게 된 민영휘의 후손들은 2017년 강남 세곡동 땅을 포함한 토지를 돌려달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2020년 최종 패소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남이섬이 민영휘의 후손이 운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서울지방법은 남이섬은 친일 재산이 아니라는 최종 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도 민영휘 후손들이 여전히 땅을 팔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는데요. 아무래도민영휘가 가진 땅이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많다 보니 심지어 땅을 국가로 귀속시켜도 이상하게 땅이 계속 나온다는데요. 1945년부터 2022년까지 매각한 땅만 170여 필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친일파 후손들처럼 재산 물려받고 떵떵거리며 사는 후손들도 있고, 후대로 상속되는 과정속에 망해버린 경우, 애초에 상속 자체가 되지 않은 경우도 대다수라 합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국가 유공자분들에게 그에 맞는 예우를 해드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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